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달로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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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죽이다. 묽게 풀어진 밥알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에는 아픔도 조금 괜찮다고 느낀다. 조심스럽게 아픈 부위를 살살 어루만지는 느낌. 이 책도 같다. 작가 아오야마 미치코의 책 ‘도서실에 있어요’에 대한 말이다. 이 책은 마치 죽처럼 술술 읽힌다. 금세 마지막 장에 이른다. 하지만 절대 대충 만든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독자의 아픈 곳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거대한 음모, 커다란 사건은 없다. 사소하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건만 있다. 취업, 퇴직, 육아, 꿈, 기타 등등. 그냥 독자의 이야기 같다. 따라서 등장인물이 낯설지 않다. 특히 책은 챕터마다 주인공은 매번 바뀐다. 끌어안고 있는 고민도 달라진다. 따라서 독자들은 적어도 이들 중 한 명 이상에게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고민이 있고, 그래서 따뜻한 손길을 필요하다면 이 책을 보자. 낱말에 담긴 공감의 힘은 독자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어딘가 마음 아픈 고민이 있다면 추천한다.
당신 옆에 있어요
책 ‘도서실에 있어요’는 연작 소설이다. 각 장마다 주인공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들에게 접점이 하나 있다. 바로 도서실이다. 구체적으로는 도서실 레퍼런스 룸에서 양모를 바늘에 콕콕 찌르는 사서, 고마치 사유리의 존재다.
고마치 사유리. 그녀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주인공들의 묘사를 종합해보면 대충 큰 체구를 가지고 있는, 흰 피부에 고급스러운 비녀를 머리에 꽂은 수상한 사람으로 여긴다. 거기다 취미인 양모 펠트를 하고 있는 모습은 뭔가 기괴하다. 큰 체구의 사람이 웅크리고 바늘 두 개로 콕콕, 양모를 찌르는 모습. 그 장면만 때어 놓으면 공포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녀가 특이한 건 모습만이 아니다. 그녀가 내뿜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그 자체이다. 특히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는 건 아닌지 착각할 만큼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매번 주인공에게 하는 “뭘 찾고 있지?”라는 그녀의 질문은 그냥 물음이 아니라 주문과 같다. 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차리는 듯하다. 작성한 책 추천 목록 마지막 줄에 상대에게 진정 필요한 책을 적어 놓는 것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마치 당신의 고민은 다 안다는 듯.
하지만 사서 고마치 사유리는 자신이 뒤에서 떠밀어 준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양 주인공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당신 스스로 필요한 걸 얻어냈을 뿐.” 자신은 그저 책을 찾아주었을 뿐, 거기서 얻은 것, 그래서 행동한 것은 모두 주인공 본인들의 힘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시치미를 뚝 때고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말이다.
이 순간, 소설을 쓴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은 결국 마지막에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은 고민 앞에 오롯이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라. 자신을 지탱해 줄 사람은 언제나 있다. 확실히 주인공들은 혼자가 아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직장 동료이든 친구든, 어쨌든 이들 옆에는 누군가 있다. 덧붙여 사서 고마치 사유리까지 말이다.
책의 장단점
이 책은 ‘죽’과 같다. 특징도 닮았다.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다. 이 글도 그렇다. 자극적인 사건은 애초에 이 책에 없다. 등장인물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고, 사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정 선을 넘어 충격을 주는 사건이나 마음을 뒤흔드는 계기 같은 것은 없다. 시종일관 잔잔하다. 마치 호수 한가운데 있는 것 마냥.
책은 따라서 자극적인 재미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이 책의 힘은 ‘공감’이다. 독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고민과 똑 닮은 등장인물을 보며 공감한다. 일부러 흔한 고민들을 주요 제재로 집어넣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덧붙여 공감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없도록 작가는 친절하게도 연작 소설 방식을 사용했다. 세대가 다르고 성별도 다른, 하지만 일반적인 고민을 가진 여러 주인공들. 다양한 주인공은 분명 다양한 세대, 분야, 성별의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는 데 목적이 있으리라.
예컨대 사회 초년생, 퇴직자, 직장인, 백수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의 고민은 누구나 해봤을 법한 것 들이다. 등장인물이 불안해하고 아파하는 상황은 마치 우리 독자들의 마음을 보고 쓴 듯 닮아 있다.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이 나름대로 답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할 때, 독자는 따끈한 죽 한 그릇을 비운 것처럼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장점이 죽과 비슷하다 했다. 하지만 단점 또한 죽과 같다. 죽은 아픈 사람들이 먹기에 좋지,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 맛도 심심하고, 씹히는 감촉도 별로 없으며, 무엇보다 죽보다 맛있고 자극적인 다른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 책은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을 만큼 부드럽다, 하지만 그뿐이다. 우리는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치유받는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등장인물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들이 겪는 불안과 초조함, 고민과 갈등은 일상적이지만 절대 간단히 해결될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책 안에서는 이들의 문제가 술술 풀린다. 설령 주인공이 어떤 내면 상태인지 서술로써 독자들이 알아챈다고 해도, 그래서 문제에 공감한다고 해도, 이 책의 해결 방식도 독자가 그대로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결말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문제는 공감하지만, 이들이 넘어야 할 시련이 과연 제대로 된 시련인가? 물론 백수의 고민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건 아니다. 퇴직자의 마음속은 얼마나 답답할지 이해 못 할 정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시련이 별로 시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대체로 뒤의 단계를 거친다. 우선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이 가진 고민 이야기를 조금 하고, 도서실 사서에게 받는 엉뚱한 책 추천이나 부록인 양모 펠트를 받고, 혼자서 고민하고, 깨닫고, 그리고 행복한 결말. 이게 다다. 이 책을 읽는 분들께 묻고 싶다. 이걸 시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냉소적인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공감은커녕 얼렁뚱땅 해결되는 문제들에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잔잔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자극적인 소재도 없고, 충격적인 사건도 없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고민거리를 담고 있다. 이는 마치 에세이 글 한 편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일상적인 글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공감을 통해 독자 자신을 치유하는 그런 글 말이다. 만약에 독자가 이러한 목적으로 글을 읽을 생각이라면 잘 선택했다. 이 책은 독자의 목표에 부응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재미와 충격, 창의성과 날카로움을 이야기 속에서 원하는 독자라면 단호히 이 책 읽기를 반대한다. 꾸역꾸역 읽어나가면 무엇이라도 재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려고 책을 읽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재미있는 책은 많고, 책에 한정하지 않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는 더욱 많다. 굳이 자극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 저자
- 아오야마 미치코
- 출판
- 달로와
- 출판일
- 202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