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생각정원)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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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해쳐 나가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존의 세계 질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했을 뿐 이전부터 세계 곳곳은 파열음이 들리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점점 극단적인 세력들에 의해 망가지고 있었다. 탈냉전 시기의 잠깐 동안의 평화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깨졌다. 사회 내부는 불평등, 부조리, 부정의로 인해 갈등의 수위가 점점 오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조 증상을 무시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폭발했다. 현재의 암담한 상황은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기에 절망할 여유 따위는 없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해야 할까? 다행히도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책 ‘자발적 복종’이 이를 위한 지침서이다. 필자는 현대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사람의 굴종적 태도, 무관심한 인식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복종하는 인간
사람을 자유를 갖고 태어난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천부 인권을 갖고 있으며, 근간이 되는 것이 자유라는 사실은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향유’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외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우리 주변, 혹은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복종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머릿속에 일군의 사람들, 혹은 권력 그 자체를 떠오를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유를 헌납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생각해보자. 만약에 우리들이 독재자를 따르기 거부하면 어떨까? 독재자가 가진 힘은 수많은 대중들에게서 나왔다. 그가 제 분수에 맞지 않은 힘을 얻은 것은 그에게 자신의 권력을 바친 대중 때문이다. 대중이 이제 다시 자신의 권력을 회수하는 순간 독재자는 힘없는 일개 인간일 뿐이다. 이 순간 대중은 온전히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우리는 이 방법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물론 그저 복종을 거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횡포에 맞서기 위한 첫 단계는 거부이며 저항이다. 우리가 우리들의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행위가 있어야만 다음 단계를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따라서 저항이라는 행위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저항을 하는 법을 잊은 듯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복종하는 건 악과 타협하는 것이니
21세기의 자발적 복종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조차 없다. 그중 한 가지를 꼽아보자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는 러시아 국민들이 있다. 러시아 내부의 여론조사를 보면 전쟁 이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이처럼 전형적인 ‘자발적 복종’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반전 시위와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전쟁 초반에 잠깐 일었다가 그쳤다. 오히려 이제는 현 러시아 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사람들만 넘쳐난다. 이들은 정부가 장악한 언론의 프로파간다를 굳게 믿는다. 그들은 러시아 군대가 정의의 군대이며, 악의 축인 서방 세력들은 호시탐탐 러시아를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러시아 군대는 점령지 곳곳에서 약탈, 방화, 살인, 강간, 기타 전쟁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범죄자이다. 그리고 이를 지시한 러시아 정부 또한 전쟁 범죄자일 뿐이다.
러시아 국민들의 행태를 정보 차단 때문이라고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확실히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정말로 러시아 정부의 선전 선동을 그대로 믿고 있을까? 필자는 이들 중 많은 수가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한 아들과 어머니의 전화 통화가 도청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전장의 실상을 전해 주어도 믿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짜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느니,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 자신들의 가축을 병들게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정부에 자발적 복종 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실제 전장에 있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일갈을 했다. 그런데 과연 이 어머니는 정말 정부의 선동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들이 직접 전하는 참상은 무시한 채?
한편 최근 러시아 군이 약탈한 물건을 택배로 집에 보낸다고 한다. 그걸 받아 든 집들은 과연 러시아 군대가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전쟁범죄의 증거물인 그 약탈품을 들고서 말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자기 스스로를 속여도 소용없는 짓이다. 죄의 증거가 러시아의 곳곳으로 배달되고 있으니 말이다. 선동으로 사람을 완전히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이들도 진상을 어렴풋이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 대다수는 눈과 귀를 틀어막고 현 정권에 지지를 보낸다. 이유는 하나다. 지금의 전쟁이 자신들의 자발적인 복종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을 지지했고 복종했다. 그들은 갖가지 이유를 붙여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특히 경제,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이 결정적이었다. 그 말에 속은 많은 러시아 국민들은 제 권력을 들어 받치고 복종하기를 택했다. 독재가 나쁘고 푸틴 대통령의 전횡으로 정부 곳곳이 부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제 선택을 부끄러워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듯 거짓을 진실로 믿으려고 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다른 가해자이다. 그들은 독재자를 몰아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많은 기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복종했다. 그래서 이 지경까지 왔다. 무의미한 전쟁이 일어났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 이제 러시아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뿐이다. 악과 타협하여 고개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선을 행할 것인가? 러시아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복종하지 말자
사람은 살면서 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이것들은 우리들의 무릎을 꺾는다. 꿇은 자세로 위를 올려다보면 누군가 내려다보는 이가 있다. 그것이 권력가이든 재력가이든 혹은 무형의 힘이든 상관없다. 그 순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자세를 바로 하고 내가 가진 권력을 들어다 받쳐야 할지, 아니면 다시 일어나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저항을 해야 할지 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미래가 펼쳐져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이 낭떠러지 일지 벽일지 아니면 길일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쉽게 전자를 선택한다. 복종은 예상 가능한 미래를 선사한다. 더 이상 힘들게 투쟁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은 복종을 거부한다. 이들은 어느 사회에나 어느 시대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권력이 자신을 찍어 누르려 하든 상관없다.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건 그들이 복종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복종은 필연적으로 그 사회를 썩게 만든다.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도래하는 것을 그들은 느낀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 움직여야 한다. 저항을 선택한 이들은 기꺼이 그 역할을 감내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리고 사람들의 선두에서 모진 고난을 다 겪는다.
우리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저항으로 성장했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탄핵 시위 등 많은 사건에서 시민들이 승리한 것은, 그리고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은 바로 저항을 선택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 사건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좀 더 좋은 쪽으로 바꿨다.
그렇지만 저항에 끝은 없는 법. 사회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부조리가 넘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복종하며 권력을 내던질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우리는 저항을 해봤다. 우리는 권력에 승리한 경험이 있다. 단 한 명이라도 저항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다음 날은 전날보다 좋은 날이 될 것이다.
모두 저항하자.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저항의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다. 불꽃은 이내 사그라들기도 하고, 크게 번져 활활 타오르는 들불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세상이 반짝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불꽃 하나가 꺼져도 또 다른 불꽃이 다시 피어난다.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이제껏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저항해야 할 상황 앞에 서 있다.
세계는 이제 극단주의의 득세, 성별 갈등, 인종 갈등, 빈부 격차, 기타 여러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세상에 불의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득권은 이런 갈등 상황을 방치하거나 부추겨 제 이득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들이 복종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항하는 것이다. 현재의 모순과 불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자. 갈등을 부추기는 권력에 맞서 싸우자. 미래를 열어젖히는 책임이 있는 사람은 결국 권력의 주인인 우리뿐이다.
- 저자
- 엔티엔 드 라 보에시
- 출판
- 생각정원
- 출판일
- 2015.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