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소개] 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한겨레출판)

작은독서가 2022. 8. 29. 09:31

책 소개

책 '관통당한 몸' 전자책 표지 사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 전쟁 없는 날은 없었다. 특히 역사의 주요 변곡점은 대체로 전쟁이었다. 예컨대 고구려 – 수 전쟁의 대미를 장식한 ‘살수 대첩’은 수나라의 붕괴 및 멸망의 도화선이 된 사건 중 하나였다.

한편 전쟁 범죄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를 보면 그 유명한 항우의 학살, 조조의 서주 대학살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를 보면 전쟁 범죄의 역사도 오래된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책 ‘관통당한 몸’은 전쟁 범죄 가운데 전시 강간을 다룬 책이다. 저자 ‘크리스티나 램’은 오랜 시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전장을 누볐다. 그녀의 삶이 전쟁에 가까울수록, 전쟁 범죄의 참상과도 가까웠을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전시 강간이라는 범죄에 더 집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굳이 저자가 전시 강간에 대한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와는 달리 전쟁 범죄는 세계적인 지탄을 받는다. 전쟁 범죄에 대한 책도 많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피해자의 인터뷰가 빼곡히 들어가 있고,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한 자료, 문헌, 사진 등을 정리한 양서들 하나쯤 읽거나 최소한 제목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시 강간에 대한 내용만을 적은 책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갖가지 전쟁 범죄(학살, 고문, 기타 등등)에 포함된 한 챕터로 다루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전시 강간, 이 범죄는 여타 전시 범죄는 물론 일반적인 강간과도 다르다. 전시 강간은 일반적인 강간과는 다르게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과 목적을 갖고 일어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전시 강간의 목적은 비슷하다. 그것은 가족, 공동체, 사회를 붕괴시켜 이들이 사는 터전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세세한 목적으로는 자원, 민족주의, 종교 등등이 있지만 공동체 붕괴를 야기한다는 목표만은 공유한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일례로 이라크 야지디족의 경우 자신이 살던 터전, 신성한 산에서 강간당한 여성과,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은 그곳에 가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꾸 생각나니까. 피해 여성은 계속 피해 사실을 곱씹고, 가족들은 죄책감을 계속 곱씹는다. 그렇게 가족이 하나 둘 떠나거나 사라지고, 마을은 붕괴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콩고의 경우에도 전쟁 범죄, 특히 전시 강간으로 인해 공동체가 분열하고 결국에 마을이 소멸한 곳이 수없이 많다.

한편 전시 강간의 피해자는 다른 전시 범죄와는 다르게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마음과 이를 쉬쉬하는 문화 때문에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원래 그냥 일반 강간 사건의 피해자도 그러한데 전시 강간 피해자는 오죽 그럴까. 그래서 많은 피해자가 그 일을 없던 일로 하고 숨긴다. 강간은 여타 전쟁 범죄(예컨대 학살처럼)처럼 눈으로 딱 보면 확연히 보이는 것이 아니다.(죽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 피해자가 시체로 발견되면 강간도 잘 드러나는 범죄다.) 적어도 시체 더미가 되거나 박살난 유골로 발견되는 건 아니니까. 따라서 피해자가 이를 쉬쉬하면 알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죽을 때까지 참아내거나, 참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직 피해자 중 소수만이 자신의 전시 강간 피해 사실을 밝히고 가해자의 책임을 요구할 뿐이다. 무진장의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책 ‘관통당한 몸’은 전시 강간의 피해자, 그것도 피해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언론인이라는 직업 덕분에 저자 ‘크리스티나 램’은 이라크 야지디족, 미얀마 로힝야족, 르완다 투치족, 콩고 내전의 피해자, 세르비아, 소련, 필리핀인 위안부(일본의 그 위안부 맞다. 위안부는 한국인이 가장 많지만 그 외 일본의 식민지 여성들 중에도 피해자가 있다.) 등을 직접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은 앞서 말한 ‘소수’이다. 피해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가해자의 책임을 요구하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이 일은 상식적인 일인데, 현실은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들에게 현실은 비상식적이다. 피해자인 당사자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더러운 몸. 적에게 몸을 대주고 살아남은 배신자. 기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을 그들은 감내한다. 반면 가해자는? 책임 없이 그냥 산다. 딱히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몇몇 이례적인 사례들이 나오는 때가 있기는 하다. 높으신 분들이 강간 문제로 재판을 받아 형을 선고받는 등의 일. 근데 이들은 대개 교묘하게 이를 빠져나와 다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면 끝이다.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것도 억울한데, 어처구니없게도 전범 재판을 회피한 이들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일도 생긴다.(세르비아의 일이다.) 그들은 아마 천수를 누릴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 속에서 죽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슬프지만 책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베드 엔딩으로 향한다. 그게 작금의 현실이다. 비상식적인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슬프다. 이제 전시 강간의 피해자들은 노환으로 죽어가고 있다. 가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꼬집는 책이 바로 ‘관통당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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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을 다룬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전시 강간을 이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작품은 거의 없다. 특히 피해 여성들이 있는 곳이 어디에 있든지 찾아가서 그들의 이름을 대고 그들의 피해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언론인이자 전쟁 지역에 드나드는 저자 ‘크리스티나 램’이 아니라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 ‘관통당한 몸’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시 강간은 적어도 타 국의 사람들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다. 다 알다시피 일본제국의 위안부 제도 때문이다. 일본군에 희생된 위안부(사실 일본군 성노예라고 쓰는 것이 맞겠지만 위안부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니 이 단어를 쓴다.) 할머니들이 증언,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모를 수가 없다. 덧붙여 일본은 사사건건 위안부를 부정하는데 자신의 외교력을 투사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일본의 소녀상 철폐 시도를 볼 때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계속 상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시 강간, 아니, 전쟁 자체를 경험한 지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그래서 이 문제를 역사의 한 장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 전쟁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명색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 중 하나로 불리는 우리나라는 단체로 안전불감증에 걸려있다. 이는 최근의 군인에 대한 무시로 잘 드러난다. 특히 2030 여성들의 군인과 군대에 대한 무시와 근거 없는 비난은 휴전선 북쪽에 힐끔거리는 북한군을 바라보는 군인들에게 좌절감, 박탈감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한국 군대가 국민 보호 역할을 잘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점점 우리나라가 쇠락하는 징조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군에 대한 무시와 경멸,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기피는 언제나 국가의 위기를 불러왔으니까. 임진왜란이 그러했고 홍건적의 난이 그랬다. 이때도 많은 전쟁범죄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전쟁의 승패만 기술한 역사책들 때문에 놓치고 지나가기 때문일 뿐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 범죄는 역사책 얘기라고, 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쟁 범죄, 특히 전시 강간은 절대 역사 속에서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일이 아닌 것도 아니다. 현실이다. 지구촌 시대라고 하면서, 세계화 시대라고 하면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범죄의 현장은 무시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지구촌은 그냥 선진국이나 관광 산업으로 먹고사는 국가들 뿐이다. 전쟁 지역은 우리가 발 딛지 않는 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발 닿지 않는 곳을 아예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예를 들어 한국 국민 중 필리핀의 이슬람 독립운동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게 고작 몇 년 된 최근 사건도 아니고 무려 몇십 년이나 이어진 것인데도 그렇다. 참고로 필리핀은 한국에서 몇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나라다.

따라서 이 책 ‘관통당한 몸’은 젊은 청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전쟁은 책이 아니라 현실이고, 끝난 게 아니라 운 좋게 한국이 전쟁의 휴지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특히 청년 여성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저 전시 강간 피해자의 과거 기록이 아니다. 미래에도 누군가는 분명 전쟁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서 분명히 있을 전시 강간과 그 피해자들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경고문이기도 하다. 이 책 ‘관통당한 몸’을 통해 저자 ‘크리스티나 램’이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