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왼손잡이도 AB형도 아니지만 (카라타치 하지메, 동양북스)
<별것도 아니다>
성은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자신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성 관련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우리나라는 더욱더 어렵다. 우리의 성교육은 현실과 동떨어졌고, 학생들은 교육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수업을 계속하는 것이 용할 지경이다. 물론 별 소용은 없다.
이 책은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만화라는 장르도 그렇고, 작가의 의도도 그렇고 주제를 심각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묘사가 가볍다고 내용도 가벼울까. 오히려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내밀한 마음속까지 훤히 알 수 있다. 성 소수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말이다.
작가는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는 당사자다. 여성인데도 그 사실을 불쾌해한다. 남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생각에서 더 나아간다. 과연 자신이 제대로 성 정체성을 생각해 봤는지 따져본다. 작가는 정체성 혼란의 근원을 탐색한다. 한 단어, 한 문장. 좋게 말하면 세세하고, 나쁘게 말하면 잡다한 것들을 몽땅 다시 생각해본다. 생각의 흐름은 그대로 이야기가 된다. 끝에서 작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일단 정의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은 논 바이너리이고 연애 감정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딱히 남성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만화이다. 성 정체성의 고민과 그 이유를 분석하는 과정은 절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유쾌한 부분도 있다.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면 가볍게 읽기 좋다. 특히 청소년들! 이들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사실 성 정체성 고민이 없는 아이는 없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세태가 이를 억압하고 있을 뿐이다. 책에서 일본의 성동일성장애 비율은 8%이라 한다. 왼손잡이의 비율과 비슷하다. 한국도 이런 고민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내 자식일 수 있다.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성적 다수자라서 느끼지 못한 아픔과 불편함이 성 소수자에게는 수없이 많다. 아주 사소한 말, 행동 따위에도 성 소수자는 아파한다. 적어도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 보자.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 혐오감을 가진 분께도 말한다. 그렇게 혐오하는 이가 어쩌면 당신 옆 사람일 수 있다. 소수자는 사실 생각하는 만큼 소수는 아니다. 훨씬 많다.
지금은 자살한 성전환 군인이 있었다. 그는 소송 결과를 받아들지도 못한 채 그대로 숨을 거뒀다. 그에 대한 여러 문제는 차치하고, 성 소수자로 살면서 받았을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해본 적 있는가? 흔한 가십거리 중 하나로 생각해 잊어버렸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자. 성 소수자는 현실에 존재하고, 그들이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하늘은 있고 태양과 별과 달은 존재한다. 성 소수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다. 왼손잡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 저자
- 카라타치 하지메
- 출판
- 동양북스
- 출판일
-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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