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 일터에서의 사고와 질병, 그에 맞서온 이들의 이야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 포도밭출판사)
책 소개
이름이 중요한 건, 부를 단어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은 노동 현장에서 병, 질환 등 부를 말이 없던 것들에 명칭을 다는 사람들이 겪고 생각한 것을 엮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노동자의 삶에 무신경했다. 언론에 드러난 일부 끔찍한 일들에는 사람들은 분개한다. 그건 극히 일부이다. 잔인한 현실은 더 깊은 곳에 묻혀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채 숨어있다. 저자들은 마치 흙 속에 파묻힌 유물을 조사하듯 숨어있는 현실을 끄집어낸다. 노동자를 아프게 하는 것과 그 속에서 아파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말이다.
사회가 점점 좋아져서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죽 늘어선 고급 아파트, 스마트폰 한 번만 누르면 하루 만에 원하는 걸 배달하는 서비스, 전화 한 번이면 누구보다 친절하고 빠르게 우리 집 가전제품 따위를 고쳐주는 기사 서비스, 점점 편의성을 더해가는 공공서비스 등. 사회의 변화를 실감할 이유는 정말 많다. 그런데 이 변화는 우리가 무시하는 노동 때문에 가능하다. 고급 아파트를 짓느라 근골격계 질환을 무시로 달고 사는 건설 현장 인부. 30분 배달, 심지어 20분 배달이라는 불문율로 이를 지키기 위해 아슬아슬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배달 노동자. 인간적인 대우 없이 기계처럼 부려먹는 택배 배송 서비스와 관련한 많은 야간 노동자들. 온갖 발암물질에 뒹굴며 불 끄느라 사람 구하느라 언젠가 보면 암에 걸려 있는 소방관들. 기타 등등. 이들 덕분에 한국의 밝은 면은 점점 광채를 더한다. 한편 그림자는 광원이 밝을수록 더 까매진다.
책은 다양한 노동자의 비인격적인 노동 환경과 그 결과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과 폐단이 산사태처럼 독자에게 쏟아진다. 독자 중 누군가는 분노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포자기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다가 자신이 편리함이 노동자의 희생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한편 다 알고 있지만 ‘내 알바냐?’라는 심정으로 무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경고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방향은 달라도 충격을 받으리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소비자가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과거, 가려져 있던 노동 문제는 투쟁 외에 별다른 대응책이 없었다. 당장 이 책을 기획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도 과거 원진레이온 사태를 계기로 하여 출범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노동의 현실을 알고 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노동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관심의 힘은 세다. 예컨대 최근 SCP 불매 운동이 있다. 기계를 다루다 죽은 노동자. 참혹한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고 당일 그 장소에 있는 기계를 켜고 작업을 지시한 회사. 대표자, 책임자의 무성의한 사과. 장례식장에서 합의금 금액 얘기나 운운하고, 죽은 원인이었던 단팥빵을 가져와 고인을 능욕하는 회사의 행태. 사람들은 이에 분노했다. 그저 참혹한 사고라서 그런 게 아니다. 막을 수 있었고, 그럼에도 막지 않았기에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우연히 사고 당사자일 뿐 사실 그곳에 있는 사람이 ‘나’ 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소비자를 무조건 노동 문제에서 선한 존재로 단정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에 무관심하고 무례하다. 앞서 SCP 불매운동이 가능했던 까닭 중 하나는 딱히 자신의 삶에 큰 피해를 주거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이 만드는 양산빵 안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노동자의 권리가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경우에는 그 어떤 회사보다 악랄한 게 바로 일반 사람이다. 예를 들어 죽거나 죽이거나 죽임 당한다는 ‘경비 노동자’에 대한 아파트 주민의 갑질은 너무 흔해서 기사화되는 것조차 민망하다. 배달 노동자는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재앙이다. 싫은 소리 듣는 거야 예사이다. -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무례한 인간이 너무 많아서 이런 경우를 다루면 한도 끝도 없다. - 갑질, 협박, 고소도 심심찮게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는 칼을 들고 쫓아오기도 한단다. 대체 인두껍 쓰고 이런 짓을 왜 저지르는 걸까. 결국 자신이 ‘을’로 대하는 저 노동자들이 있기에 우리의 생활이 편리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문제는 이런 인간이 한 둘이 아니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이 쓰인 목적을 한 번 생각해봤다. 필자의 생각에 책의 저자들이 원한 건 일반 사람들이 지금 노동자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노동자의 문제는 결국 시민의 연대로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이 노동 현실을 모르면 동참은커녕 이 사태를 방관하기만 할 것이다. 무례하고 잔인한, 혹은 방관하는 시민들은 가라. 서로 연대하여 노동하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의 힘만 있으면 된다. 우리의 공감만 있으면 충분하다.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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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
- 포도밭출판사
- 출판일
- 202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