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생명평화아시아, 도서출판 참)
<노예제국 대한민국>
노예 국가 대한민국
외국인 노동자는 필수 인력이다. 이들이 없으면 과장 좀 보태서 한국 산업이 마비된다. 이런 현실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임금을 싸게 주고 부려먹기 편하다. 노동 규제에서 외국인은 사각지대에 있다.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들. 무시해도 혐오해도, 그리고 피해를 입혀도 별 상관없는 존재들. 이는 딱 노예가 아닌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의 출판에 관련된 모든 인물들도 그리 생각한다. 이 책은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과 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다룬다. 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약관화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통을 한국 사회가 알고 우리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현실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은 참혹하다. 왜 차별받을까. 이유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이다. 한국 사회는 노동자를 천시한다. 또 외국인, 특히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문화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가 동남아시아 사람이다. 이러니 한국 사회의 차별과 멸시가 안 생길 수 있으랴.
소수의 뜻있는 사람들 – 가령 이 책을 저술하는데 보탬이 된 사람들처럼 – 은 이들을 도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들을 무시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지옥이다. 고통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한국인을 위해 일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좋은 말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이들
테즈 구룽과 차우다리가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두 사람은 책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제목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돼지똥통에서 죽었다. 언젠가 돼지 분뇨가 모이는 집수조가 막혔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은 집수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픽 쓰러졌다. 꽤 시간이 지나고 이들을 집수조에서 빼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미 죽은 뒤였다. 이유는 황화수소 탓이었다.
분뇨는 황화수소의 배출원이다. 이 기체는 농도가 높을수록 치명적이다. 심지어 심하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일할 때, 원칙은 두 노동자가 집수조에 들어가기 전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있어야 했다. 사고를 막을 도구를 제공하는 건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고용주는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말은 없었다. 당연히 기본 도구도 없었다. 고용주는 사고 뒤에야 몰래 마스크, 장갑 그리고 작업복을 타 직원에게 지급했다. 딱 봐도 사고를 의식해 한 면피성 행위였다. 그런다고 죽은 이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위험한 곳에서 작업하게 한 죄가 사라질 리 없었다. 당시 사고 피해자들은 장비 하나 없이 당시 맨몸으로 집수조에 들어갔다.
사고가 발생한 사업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작 벌금형으로 끝났다. 벌금 액수도 사람 목숨 두 명 분량치고는 쌌다.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한편 고용주는 사과는커녕 제대로 된 피해 보상도, 책임도 지지 않았다. 과연 OECD 평균보다 6배나 더 많은 산재 사고가 발생하는 나라답다. 그래서 유가족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결국 속 시원한 해결은 없었다. 20대 청년 두 사람은 그렇게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
값싸고 좋은 건 없다
외국인 노동자는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공장, 어선, 논밭, 식당 주방, 막노동, 건설 기타 등등 다양한 곳에서 있다. 더럽고 힘든 곳이라면 어디든 외국인 노동자가 반드시 있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문제는커녕 이들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이가 많다. 소수의 사람만이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행동할 뿐이다.
최근 세상은 윤리, 도덕을 강조한다. 선을 몸소 실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선이 정말로 선한지, 아니면 위선적인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채식주의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보자. 동물권을 위해 채식하는 이들이 늘었다. 전형적인 선이다. 그런데 채소들은 누가 생산했을까.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농업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가 필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외국인 노동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들은 법정 근로 시간은 개나 줘버린 듯 죽어라 일을 한다. 임금을 제대로 쳐 주는 경우는 없다. 아예 안 주는 경우도 있고 (자기가 만든 종이 쿠폰을 돈 대신 준 몰상식한 고용주의 이야기가 책에 있다. 실화다.) 주더라도 온갖 꼼수를 부려 적은 임금을 더 사정없이 깎는다. 외국인 노동자는 불합리를 감내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동물권을 위한 채식주의는 선한가. 노예 뺨치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통으로 지속되는 채식이 윤리적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선인지 위선인지 말이다.
채식주의의 예시만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넘치는 시대, 그들 없이 살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윤리, 도덕, 올바름의 가치가 조명되고 있다. 그런데 올바름을 행할 곳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들에게도 묻고 싶다. 이 책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를 본다면 어떤 곳에서 올바른 일이 행해져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 최선희, 박정민, 손영호
- 출판
- 도서출판 참
- 출판일
- 202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