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 심심)

작은독서가 2023. 3. 19. 13:38

<조현병 환자도 같은 사람입니다>

&#39;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39; 전자책 표지 사진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전자책 표지 사진

조현병입니다

조현병은 이제 정신병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런 조현병의 ‘조현’은 현악기의 활줄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이 병명은 과거 조현병이 ‘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로 불릴 무렵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애석하게도 이는 실패했다. 조현병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혐오감을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용례를 보자. 예를 들어 어른은 물론이거니와 어린아이들까지 이 병명을 타인을 향한 비속어로 쓴다.

이런 사례는 조현병을 혐오하고 또 악마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외국의 사례들이 더 끔찍한 경우도 있다. 가령 나치 독일의 정신병자 학살, 무지와 반지성주의와 혐오로 똘똘 뭉친 조현병 환자에 대한 미국의 정책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조현병 환자를 향한 무지, 공포, 혐오감은 인간 사회 어디든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결국 이들에 맞선 소수의 의인들은 몇 안 되는 지지자들과 연대해 세계 각지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책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의 작가 ‘론 파워스’도 그 의인 중 하나다. 그는 조현병 아들 둘을 둔 아버지로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기반으로 이 책을 썼다. 구체적으로는 타인의 무지와 혐오, 그리고 이들의 지지를 받으려 험한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면서 책을 쓸 결심을 했다. 그는, 사실 이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둘째 아들이 조현병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한 이후 수년간은 그러했다. 하지만 애써 고통을 밀어내고 견디는 시간 동안 조현병 환자를 대하는 사회는 변하지 않고 더 악화될 뿐이었다. 결국 사회에서 조현병과 그 환자, 가족들이 감내해야 할 타인의 혐오와 공포, 그리고 역겨움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마주할 각오를 하고서.

조현병의 현재와 미래

책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작가의 경험만 들어있는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의 책은 서구 사회에서 조현병이 과거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관련 역사를 서술한다. 책에서 조현병 관련 내용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근대에서 현대로 나아가며 서술된다. 이 내용들 사이사이에 작가 자신의 과거가 들어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결혼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행복하다 아이들의 조현병 증상에 절망을 느끼고 끝내 둘째 아들이 자살하며 남은 첫째 아들이 뒤늦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고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긴 책 내용을 여기에 전부 풀어놓을 순 없다. 다만 간단히 말해보면 조현병, 그리고 환자들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비이성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삶을 살고 또 마감하는지를 인물, 사건, 정책, 이념, 종교(사이비 포함) 등등을 가져와 설명한다. 독자는 이 장구한 세월 조현병 환자들이 어떤 세상을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사람이 얼마나 제 혐오 감정을 표출하는 데 있어 영악한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동시에 사람이 얼마나 제 혐오 감정을 표출하는 데 있어 영악한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한편 사회가 ‘올바른 길’로 가는 여정이 얼마나 느리고 또 고통스러운지도 알 수 있으리라. 선한 소수가 무지하고 혐오를 남발하는 대중의 방해를 뚫고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과연 언제까지 전진과 후퇴, 좌초와 절망을 맛보아야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 희망을 집어넣었다. 책을 보면 확실히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더디지만 천천히 나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선한 소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직 넘을 산이 많은 건 확실하지만, 적어도 조금씩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작가의 둘째 아들 캐빈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첫째 아들 딘은 끝내 조현병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인간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그들이 모두 사회에서 외따로 떨어져 격리된 채 삶을 이어가는 건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조기에 조현병을 알아채고 치료를 받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조현병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심지어 상술했듯 어린아이들까지 ‘조현병’이라는 단어를 욕설 중 하나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조현병을 막연히 안 좋은 것,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미래가 암담하다.

조현병에 대한 혐오를 비판한다면 곧장 반대 의견이 튀어나온다. 혹은 반대하지는 않지만 묵시적으로 찬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묻는다. 조현병 환자들이 실제로 문제가 있는 건 아느냐고. 예컨대 그들은 강력범죄의 ‘잠재적 범죄자’라는 주장이 있다. 살인, 강간, 기타 범죄의 범인 중 조현병이나 혹은 다른 정신 질환이 있는 자들이 많다고 말이다. 확실히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 중 조현병 환자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범죄자 중 조현병 환자가 있다고 해서 모든 환자들을 싸잡아 잠재적 가해자 낙인을 찍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다. 마치 일부 광인 집단에서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고 낙인찍는 비이성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애당초 사람들은 조현병은 아니더라도 다수가 정신 질환을 갖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신병이 없는 자는 오히려 소수다. 그런데 정신 질환이 있음에도 대다수는 사회적 시선, 무지, 착각, 불수용 따위로 인해 치료를 받지 않고 버티거나 혹은 자신이 병이 없다고 현실에 눈을 돌려버린다. 그것이 상태를 악화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 즉 정신 질환 환자가 증가하는 이때에 같은 정신 질환인 조현병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맞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현병이라고 해서 다른 병과 다르지 않다. 백혈병에 걸렸다고 그 환자를 혐오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정받고 응원을 받는다. 그런데 조현병은? 만일 알려진다면 사회 내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조현병이 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소수를 차별하고 멸시하고 또 혐오하는 건 사람의 오래된 악습이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도 우리와 같은 멸시하고 또 혐오하는 건 사람의 오래된 악습이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다르다고 차별하고 혐오한다고? 이들도 같은 인간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웃이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화한 《아버지의 깃발》의 공저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저널리스트 론 파워스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찾아온 약탈자 같은 질병인 조현병에 무너진, 그러면서도 그 병과 싸우기를 멈추지 않은 가족의 연대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평생을 글과 함께 살아온 저자가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자기 자신과 약속했던 이야기인 조현병을 앓는 사람과 그 가족들의 내밀한 일상과 함께,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혐오하고 멸시해왔는지, 그 역사를 사회적, 정치적, 의학적으로 샅샅이 훑어본다. 2005년 7월, 3년 동안 조현병에 시달리던 작은아들 케빈이 스물한 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스스로 목을 맸다. 그 일이 있은 뒤 5년쯤 지난 어느 날, 큰아들 딘에게 마저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메시아라고 선언하고 다니다가 경찰관에게 제압되어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다. 저자는 정신질환으로 한 아이를 잃고, 또 한 아이마저 같은 병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신이 구체적인 육체의 형태로 앞에 있는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되도록 외면해왔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조현병에 대해 밝혀낸 것들, 그리고 우리가 조현병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예를 들어 조현병의 정의와 발병 원인, 신경학적인 발발 과정, 조현병의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 조현병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 조현병에 관한 정신의학자들의 이해 변천사, 정신분열병에서 조현병으로 병명이 정리된 과정 등을 빼곡하게 담아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현병 당사자의 가족만이 알 수 있는 병의 증상과 양상과 그 병과 싸울 빈약한 무기 가운데 그나마 가장 유용한 무기 등을 공개하고, 혐오와 멸시에 맞서 정신질환자를 이해하는 편에서 헌신해온 극소수의 인물도 살펴본다.
저자
론 파워스
출판
심심
출판일
2019.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