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불가능한 누드 (프랑수아 줄리앙, 들녘)

작은독서가 2023. 4. 4. 21:05

<누드로 알아보는 서양과 중국 철학의 차이>

책 '불가능한 누드' 전자책 표지 사진

서양 철학과 중국 철학, 차이를 비교하다

서양과 동양, 특히 중국과 서양 철학을 비교하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었다. 이는 놀랍지 않다. 제국주의 시대 동서양의 국력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것을 설명하려 할 때 으레 상대의 철학과 문화의 차이를 거론하곤 했으니까. 이는 제국주의 이후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발전 속도의 차이를 포함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양자 간 사상의 토대가 전혀 다르니, 이러한 비교 작업은 필수였다.

동서양의 차이 비교를 들먹이며 글을 시작한 건 소개할 책 ‘불가능한 누드’ 때문이다. 이 책은 ‘누드’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서로의 차이를 파악한다. 두 대상은 바로 중국 철학과 서양 철학이다. 비교의 목적은 서양 철학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이 문제를 대처하는데 중국 철학에 주목했다. 저자는 둘의 차이점을 알면 그 결과로 서양 철학의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각자의 철학을 비교한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왜 굳이 ‘누드’를 비교하는가? 그는 서양은 누드를 당연하게 여겨 이것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은 고대부터 누드라는 것이 마치 없는 것인 양 취급하면서 관심을 아예 꺼버렸다. 일례로 서양의 문화재를 살펴보면 심심치 않게 누드화를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은 다르다. 누드화는커녕 비슷한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중국은 산수화와 같은 풍경화가 회화의 주류를 차지했다. 즉 누드는 서로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누드를 기준으로 철학을 비교하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누드. 서양과 중국을 가르다

누드는 뭘까? 앞서 말했듯 중국에서 누드는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이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것을 따라야 할 듯하다. 서양은 누드가 하나의 일반적인 형상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형상이라 설명한다. 이 형상은 시, 공간적 요소, 문화적 요소를 단절해 일반화할 수 있는 어떤 ‘전형’을 외부 세계에 표현한다. 즉 누드는 이데아, 이상을 현실에 표현하는 형상으로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누드는 부동의 상태이다.

누드에 대한 관심은 이데아를 표현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형상의 실체, 본질, 전형을 끝까지 파고드는 인간의 특질, 그걸 중요하게 여기는 서양의 문화와 관련된다. 더 나아가 누드를 표현한다는 것을 어떤 전형성을 표현하며, 이를 통해 일반 원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물질문명의 발전, 일반적이 과학 이론의 발견, 산업혁명과 기계 문명의 태동이 여기서 나왔다.

중국은 달랐다. 중국은 일반적인 전형, 원칙, 법칙을 찾고 탐구하고 정리하는 일에 무관심했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 그랬다. 그들이 주목한 건 흐름, 길(도), 그리고 지속성이다. 따라서 중국 철학에서 그림은 형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지양했다. 오히려 그 형상 속 정신의 ‘지향성’을 그렸다. 정신의 상태를 표현할 뿐, 고정된 물상에 집착하지 않았다.

중국은 옛날에 어떤 대상의 형상을 유사하게 그리는 자를 하수로 보았다. 이들이 높이 치는 가치는 정신을 전달하는 것, 즉 전신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다. 따라서 형상이란 그저 정신의 흔적, 표지 그리고 통로 역할을 할 뿐인 존재일 뿐이다. 형상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중국은 형상, 이데아에서 끌어올 수 있는, 본질의 고정된 형태를 재현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는 중국이 본질의 ‘일관된 차원’을 알지 못하였고, 즉 고정된 것을 모른 채 흐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즉 중국이 ‘도식화’의 문화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중국에서 유행한 그림은 누드화가 아니었다. 중국의 회화는 서양의 그것과 달랐다. 예컨대 바위그림을 보자. 중국의 바위그림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 든다. 형태는 사라지고도 하고 생겨나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하다. 고정된 형상을 찾아 종이 위에 붙박아둔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 끈질기게 누드의 이상을 찾아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과는 달랐다.


중국 철학의 과거를 통해 현대 철학의 미래를 본다 

이 책은 위와 같이 누드를 다루는 극단적인 두 문명의 차이를 설명한다. 누드라는, 어찌 보면 사소한 소재를 통해서 서양과 중국 철학의 본질적 차이를 규명하려 노력한 점은 놀랍다. 상술했듯 서양은 누드를 당연하게 여겨 신경 쓰지 않았고, 중국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드를 표지로 책 내용을 이어가는 저자의 식견과 통찰력에 감탄했다.

이 책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다. 그리 긴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어보니 체감상 실제보다 더 두꺼운 책처럼 느껴졌다. 이는 역자가 책 안에서 얘기하는데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원래 저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이 글을 어렵게 쓴다고 한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서양 철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지 않고 이 책을 읽을 경우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책 자체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한다면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도 사실상 동양 철학, 중국 철학과 단절되어 서양 철학을 근간으로 하여 철학이 발달하고 있다. 학문으로서의 철학만이 아니라 일상에도 서양의 사고방식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서양 철학의 한계는 곧 한국 철학의 한계와 같다. 따라서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다.

 
불가능한 누드
전통적으로 서양 문화에서 누드는 미술의 기원이 되었지만, 중국에서는 누드가 아예 무시돼왔다. 무엇이 중국에서 누드의 발달을 억제하게 만들었는가? 이 문제는 인류학적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다.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석학 프랑수아 줄리앙은 이 문제를 놓고 누드를 통해 예술과 사유 모드의 차이, 예술과 사상의 차이를 깊숙이 탐구해나간다. 저자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서양 철학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시도로서 중국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말한다. 미술사에서 누드화를 분석한 서양 책은 많지만 왜 그토록 누드를 그렇게 중시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사람은 거의 없다. 『불가능한 누드』는 서양철학자면서 동시에 프랑스 최고의 중국학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의 독특한 경력과 꾸준한 연구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또한 저자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머물며 저자와 함께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던 박석 교수가 직접 저자의 부탁을 받아 시작한 번역으로, 이 책 자체가 동서양 학계의 합작인 셈이다.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
출판
들녘
출판일
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