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스토리 (성소수자 부모모임, 한티재)
<당신 옆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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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성소수자의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19대 대선 때의 일이다. 토론회에서 동성애 관련 질문이 나왔다. 후보들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답변. 이것은 대한민국 성소수자의 실상이었다. 하지만 소수자의 말은 묻혔다. 선거를 위한 어쩔 수 없었다고 납득했다.
성소수자 이슈는 그렇게 반짝 떴다 사그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사리진 건 아니다. 매일 누군가는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한다. 이후 누군가는 커밍아웃을 하고, 누군가는 아웃팅을 당하면서 상처 입고, 누더기가 된 마음을 부여잡을 것이다. 비성소수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모른다. 그렇지만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혐오가 순식간에 그들의 존재를 덮어버린다.
한국은 성소수자 혐오가 심하다. 성소수자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서양은 수많은 연구가 있었고, 유의미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젠더학을 수용한 한국 학자들은 젠더의 대부분을 내 쳐버리고 ‘여성’을 위한 학문으로 변질시켰다. 젠더학이 곧 여성학이 되었다. 이들은 여성 우월주의로 무장하고 남성,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이론을 갈고 닦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자 입학 반대이다. 사건 당사자는 당당하게 트렌스젠더 여성으로 숙명여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숙명여대 학생들은 이에 갑론을박했다. 여대는 ‘순수한’ 여성 – 마치 순결을 목숨처럼 여기던 전근대 여성의 주장 같다면 바로 보았다. - 만을 위한 곳이라며, 트렌스젠더 여성은 ‘순수한’ 여성이 아니라는 혐오 발언이 나왔다.
정체성을 부정당한 당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합격 이야기로 숙명여대가 아수라장이 된 것을 보면서 결국 입학을 포기하였다.
젠더학을 배웠고 익숙했을 여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제어되지 않은 혐오는 변질된 학문 상황에 비춰봤을 때 당연했다. 그 결과 살아 있는 성소수자는 모두 혐오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 외에는 전부 이를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성소수자의 부모와 당사자의 커밍아웃
이 책 ‘커밍아웃 스토리’는 성소수자 부모와 당사자가 겪은 커밍아웃을 글로 작성하여 모은 문집이다. 처음에는 성소수자 부모들의 입장에서 자녀가 한 커밍아웃을 받고 느낀 감정에 대해 말한다. 이후 자녀들 본인의 커밍아웃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는 커밍아웃에 대한 생각, 고민과 고통의 나날. 부모님과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순간과 그때의 잔인한, 혹은 따뜻한 반응. 그 이후의 삶. 이것들이 자녀의 글에 녹아 있다.
성소수자 부모에게 커밍아웃이란 자녀를 이해하는 시작
구체적으로 책 속에 들어가 보자.성소수자 부모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면 혼돈 그 자체다. 현재 부모 세대는 성소수자라는 단어와는 연이 없는 삶을 살았다. 일부 진보 정치를 했던 분들도 있었기에 모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가 자기 가족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렇기에 자녀의 커밍아웃은 큰 충격이었다.
모든 부모가 커밍아웃의 충격 속에서 똑같은 대응을 하지 않는다. 선선히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혐오 표현을 하며 싸우는 사람도 있다. 또 애써 무시하고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그저 ‘사춘기 때’의 방황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부모와 의절할 각오를 해야 한다. 더 최악의 상황일 경우 부모가 ‘치료’라는 명목의 학대를 가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성소수자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커밍아웃의 당사자인 부모님의 대응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커밍아웃을 당한 부모라면 자신이 자녀의 가장 큰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커밍아웃은 가볍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사자 본인에게는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계속해 왔을 것이다. 입을 여는 순간까지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성공과 실패 가능성을 가늠하리라. 그래도 이를 실천하는 건 부모가 자신의 가장 든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부모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내 편’인 부모의 지지가 성소수자에게는 꼭 필요하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 본인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첫걸음
이제 성소수자가 생각하는 커밍아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커밍아웃은 첫째, 우선 성소수자 본인의 정체성 확립을 의미한다. 비성소수자가 듣기에는 이상하겠지만, 이들은 직접 정체성을 말하지 않는 한 자신을 드러낼 방법이 없다. 커밍아웃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들이 사회에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이것뿐이란 말이다.
둘째, 커밍아웃은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줄이는 수단이다. 혐오는 무지에서 나온다. 주변 사람이 커밍아웃하지 않는다면 이 무지한 사람들은 혐오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녀가, 가족이, 친구가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는 것을 알면 그들의 태도가 바뀐다. 일례로 책의 사례에서 평소 SNS에 동성애 혐오 표현을 올리곤 했단다. 그것을 보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했다. 이후 그 사람은 혐오 표현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커밍아웃은 혐오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편 성소수자들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그냥 조용히 살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즉,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살아도 충분하지 않냐는 거다. 사회에서 없는 것처럼 살면 혐오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을 숨기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자. 매 순간 거짓말로 때워나가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소수자의 자살률과 그 시도가 비성소수자보다 월등히 높은 것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 의미가, 또 그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정체성이라는 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에서, 언론에서, 그리고 주변 곳곳에서 혐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 혐오를 내뱉은 당사자는 쉽게 잊는다. 하지만 이를 들은 당사자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 하지만 혐오는 더 심해지고 있다. 마치 전염병처럼, 너도나도 혐오해야 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런 막막한 기분이 밀려온다
하지만 혐오에 맞서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옛날에 있던 노예제가 사라진 것도, 인종 차별이 많이 완화된 것도 포기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 기대하자. 아직 그 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반드시 차별이 없는 시간은 온다.
- 저자
- 성소수자부모모임
- 출판
- 한티재
- 출판일
-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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