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갤리온)

작은독서가 2023. 11. 10. 01:31

그들도 사람이기에 그렇다

책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전자책 표지 사진

 

우리와 멀고 또 가까운 존재들

우리는 매일 사건 사고들을 접한다. 굳이 찾는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다. 사건 사고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끈질기게 맴돈다. 심지어 사건은 자극적이다. 도저히 거리를 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살인, 강간, 방화, 강도, 탈옥 등등.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이 흉흉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범죄자에 대한 인식은 더할 나위 없이 시궁창에 처박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들은 사람이 아닌 그 무언가로 재분류된다. 범죄자는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배척된다. 따라서 당연히 보통 사람들은 이제 범죄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범죄자의 정체성은 사람이 아닌, 그저 그들이 저지른 범죄로 정의될 뿐이다.

 

그런데 이들과 깊이 교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변호사이다. 헌법은 범죄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이들을 변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한 선행 조건은 범죄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이다. 고로 변호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피의자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어떻게? 앞서 말했든 일반적으로 범죄자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와 다른 무언가’이다. 그것도 매우 부정적으로. 이는 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만 봐도 알 수 있다. 교도소 수감자들도 죄의 유무를 떠나 같은 인간임에도 우리는 교도소의 시설 등 개선에 인색하다. 오히려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어떤 시도도 사람들은 ‘인간적’인 대우로 보아 분노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사람 아닌 자들을 변호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이 죄인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는 것인가? 변호사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 말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대신할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책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이다. 저자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라는 인물이다. 그는 독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많은 범죄자의 변호를 맡았다. 그만큼 저자는 범죄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 경험이 그를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했다.

 

우리는 흔히 범죄라는 공통분모로 묶인 이들을 굳이 세세하게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범죄자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라고 일반화한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그는 범죄자를 일반화하며 눈을 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저자는 범죄자를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대했다. 더 나아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범죄자를 이해하지 않고, 배제하려고만 하는 현실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책은 저자가 어떻게 범죄자를 변호할 수 있었는지, 즉 이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풀어나간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 12개를 이야기할 뿐이다. 직접적인 답변은 피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범죄자를 대하는 저자의 모습은 한결같다. 그는 범죄뿐만 아니라 사람의 배경, 사연, 경험 등에 집중한다. 그러면 일반화라는 두꺼운 베일 속에 숨은 사람의 알맹이가 보인다. 그들은 성장 환경이 다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페티시나 본성 등도 전혀 다르다. 그들은 같은 면이 하나도 없다. 마치 범죄에 연이 없는 우리처럼.

 

사실 전혀 놀랍지 않다. 이들도 범죄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도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설령 그들이 누가 봐도 악한 인간이며, 동정할 가치도 없는 존재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이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즉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언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범죄자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범주 바깥으로 생각하려 한다. 범죄자를 대충 묶어 일반화해 시선 밖으로 치워버린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해, 공감을 곧 측은지심의 발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는 상대를 가엽게 여기지 않고, 동정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에서 저자가 사건의 중심인물에게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변호를 위해 피의자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아예 범죄자를 이해하기 포기하는 현 상황을 문제라 여기는 듯하다. 확실히 우리는 언론이든 다른 매체든 범죄자를 보거나 들으면 욕을 하고 탄식할지언정 이해를 해보려 시도하지는 않는다. 아마 책에 든 12개의 사건들을 이 책이 아닌 다른 매체에서 마주쳤다면 사람들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생각은 없었으리라. 저자는 그러한 우리의 심리를 알기 때문에 12개의 이야기를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나오는 인물들은 그저 악인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 그들의 성격 등 심리적 특징 등 조건을 하나하나 추가하면서 인물을 찬찬히 살펴보라. 그렇다면 단순히 범죄 하나로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사람은 범죄라는 조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이를 깨닫는다면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다시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들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의 원 제목 ‘a True Story의 True는 바로 범죄에 가려진 진실,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과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이상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