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스미노 요루, 소마미디어)

작은독서가 2024. 1. 18. 00:41

거짓된 자신은 없다

책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전자책 표지 사진

 

사람은 각자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오롯한 존재다. 따라서 자신을 찾는 것은 모든 이의 숙제다. 모두가 이를 찾는 건 아니다. 그 과제를 수행하며 우리는 때로 멈추고 또 방황한다.

 

자아를 찾는 여정은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에는 자아실현을 향한 열망은 노곤한 삶 속에서 흐려진다. 하나 둘 자아 찾기를 포기하다 타성에 젖은 삶을 영위하는 이가 늘어난다. 자아 성찰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각박한 사회가 사람들에게 작은 여유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보이는 ‘외면’과 숨겨진 ‘내면’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방황한다.

 

책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는 그런 고뇌를 담았다. 이야기 속에는 청년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는 발버둥과 아픔, 그리고 성찰이 녹아 있다. 이들은 성별, 나이, 주어진 환경 등 겹치는 특징이 거의 없다. 연결점은 단지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소설 ‘소녀의 행진’ 뿐. 이 소설은 이야기의 시작과 진행의 원동력이 되는 촉매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이 이 소설로 한 줄기 희망을 느낀다. 그것을 계기로 엮일 리 없던 등장인물의 동선이, 경험이, 삶이 서로 겹친다.

 

‘사랑받고 싶어’라는 감정에 휘둘리다 한 소설에 구원받고, 이후 소설 주인공처럼 거짓된 자신에서 해방되려는 이토바야시 아카네. 설령 거짓말일지언정 인위적인 스토리 위에 살며 그에 필요 없는 과거를 냉정히 지워버린, 그래서 진정한 자아를 잃은 듯 보이는 고토 주리아. 둘의 반대편에서 누구보다 올곧게, 내면과 외면의 합치를 이룬 우카와 아이. 마지막으로 겉과 속의 다른 사람을 역겨워하며 진실을 파해치고 욕보이려는데 진심을 다하는 우에무라 다쓰아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이제껏 잘 갈무리했던 자아의 혼란, 분열이 터진 둑에서 나오는 물줄기처럼 세차게 휘몰아친다. 마치 ‘배를 가르듯’ 찢어지듯.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어두운 감정. 자신을 찾을 여유나 기회를 붙잡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그 감정의 나신이 드러난다.

 

하지만 실제 내면이 튀어나오는 일은 없다. 갈라진 상처에서 나오는 건 그저 ‘피’ 일뿐. 가짜라 생각했던 외면도 결국 진정한 나의 한 부분. 즉 ‘나’ 일뿐이다. 진실된 자아, 거짓된 자아로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예컨대 이토바야시 아카네가 혀를 깨물며 부정한 ‘사랑받고 싶어’라는 외양도, 고토 주리아가 의도적으로 만든 스토리 위의 자신도 결국 자신의 일부다.

 

진정한 자신, 진실된 내면을 회복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는 많은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사회생활로 다진 처세술을 거짓된, 그리고 꾸며낸 자신으로 여긴다. 동시에 감춰진 곳에 진실된 내가 억압받고 있다 여긴다. 하지만 보이는 부분도 결국 다 같은 진실이다. 양쪽을 인정하고 진정 이해하는 자세를 갖자. 자신의 전부를 자신으로 인정하는 그 순간, 분열된 자아가 다시 합쳐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이토바야시 아카네가 겉과 속을 모두 끌어안은 채 살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그리고 고토 주리아가 스토리 위의 제 삶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간 것처럼.

 

덧붙여 이 이야기의 시작점인 소설 ‘소녀의 행진’을 지은 오구스 나노카의 존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스미노 요루’의 작품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의 주인공, 검은 고양이와 여행했던 소녀 ‘고야나기 나노카’를 떠올리게 하는 이 등장인물은 저자를 투영한 존재다. 저자가 현실에서 겪었던 방황과 극복을 상징하는 작가 나노카는 제 소설로 구원을 받은 이토바야시 아카네와의 만남으로 과거의 순수함을 떠올린다. 내면과 외면, 모두가 깨끗한 시절. 소설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그때. 나노카는 소중한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부디 이 이야기가 당신만을 위한 것이기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바로 당신이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진정한 자신이란 의미를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거짓된 자아란 없다. 모두가 다 나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