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이라는 금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은 꺼림칙한 단어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죽음이란 단어를 회피한다. 마치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인 것처럼. 죽음의 표현은 점점 추상적으로, 간접적으로 변하고 직접적인 단어는 의도적으로 피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생소한 일이다. 설령 죽지 않는 생은 없고,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음에도 말이다.
책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은 우리의 오랜 죽음에 대한 관례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책이다. 온갖 미사여구, 비유, 돌려 말하기로 최대한 회피하는 것을 미덕이라 생각한 죽음에 대한 우리의 관행, 편견 혹은 악습을 저자는 의문스럽게 여긴다. 특히 어린 시절, 저자에게 있어 죽음이란 비밀스럽고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가까이에 있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친구의 죽음이나 길거리 구석에 처박혀 있는 죽은 동물의 사체들을 보면서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을 꺼리거나 무서워하는 것보다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어릴 적 그녀는 죽은 사람, 시신을 직접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훗날 기자가 되었다.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채로 말이다. 그 결과 저자는 죽음을 찾아다녔다. 어째서 자신의 마음에 죽음이라는 것이 계속 남아있는 것인지 생각했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여정의 산물이다. 죽음 가장 가까운 곳, 시신을 옆에 두고 일하는 사람들.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닌 저자는 끝내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책을 읽을 독자에게 남기도록 하겠다.
어떻게 견디는가
책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은 죽음을 다루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데스마스크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해부 실습을 위한 시신 보존을 하는 이도 있으며, 시체를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미래를 위해 제 죽은 몸을 기꺼이 냉동시켜 보존하는 일을 하는 이도 있다. 또 사산아를 받는 조산사, 시신 해부를 하는 사람, 장의사,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있다.
타인의 죽음이 누군가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면 언제나 이상한 감정이 솟아난다. 이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겠지만 비슷한 단어가 있다면 긴장? 초조? 불안감? 두려움? 이런 감정이 뭉친 단어일 것이다. 적어도 긍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그런데 죽음 곁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 감정을 느끼면서도 버틸 수 있는 걸까. 특히 시신 곁에서 죽음을 보며 일하는 이들은 어떻게 그런 ‘힘든’ 일을 꿋꿋하게 참을 수 있는 걸까. 부패로 인해 역한 냄새와 더러운 오물들, 피부 아래 위로 꿈틀대기 시작하는 구더기를 맡고 보고 느끼는 일련의 과정들이 상상이 아니라 매일 마주치는 현실이라면 필자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저자가 일부러 생생하게 책에 묘사를 해둔 탓에 더 그런 느낌을 받는 걸지도 모른다. 덧붙여 앞서 말한 그 감정들. 죽음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은 눈으로 보는 시체의 참혹함보다 더 끔찍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감정의 폭풍을 견뎌야 했다. 이들도 보통 사람이니까. 항상 마주하는 죽음과, 그것이 촉발하는 여러 감정들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은 약간의 거리두기를 택했다. 신기하게도 하는 일도 다르고 등장하는 이들 모두 접점은 없지만 견디는 방식은 비슷했다. 감정에 그대로 휩쓸리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는 것도 아니며, 죽은 이에게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진심을 다해 대했다. 또한 이들이 죽은 사람에게 하는 일들은 무의미한 행위 하나조차 정성을 다했다. 가령 해부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해부 이후에 최대한 이전 상태로 꿰매어 시신을 돌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거리를 두면서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음 하나하나를 완전히 없었던 것처럼 잊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에필로그에서 나오는 전 형사는 그런 죽음들을 잊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알기 위한 여정을 걸어온 저자도 그러할 것이라고 하면서.
죽음에 대하여
책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 곁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저자가 직접 만나고, 그들이 하는 일을 체험하거나 관찰하면서 덧붙여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죽음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아쉽지만 저자는 죽음에 대해 조사하면서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책의 결말부에서는 저자가 어떻게든 죽음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깔끔하게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의문만 커진 듯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책 하나 읽는다고 죽음이 뭔지, 이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제대로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과 같다. 죽음은 어렵고 복잡한 단어다.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지만 정작 죽음 가까이에서 일하는 그들도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물론 다른 이들보다 죽음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그래서 나름의 답을 찾은 듯 하지만 그 답은 절대적 진리와 같은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대답일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게 되었든 그것이 옳다. 어차피 이 의문의 답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느긋하게 생각하고 답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볼 때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죽음에 너무 천착하는 바람에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려 조급하게 이리저리 헤맨 듯 보였다. 필자는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언젠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정리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 다시 이 책을 펼쳐본다면 지금 읽었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까? 그 순간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 저자
- 헤일리 캠벨
- 출판
- 시공사
- 출판일
- 2022.10.05
이 책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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