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만큼 아프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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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학교 폭력 얘기다. 최근 몇 년 간 잔인한 학교 폭력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분노는 일시적이었다.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의 말은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다.
이는 놀랍지 않다. 이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심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학교 내 폭력은 존재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곁에 있는 방관자들은 알고도 모른척했을 것이다. 교사도 알면서 시치미를 뚝 때고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 그러니 학교 폭력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질 리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 폭력에 관련 없는 척, 무관심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숨겨서 뭐하랴,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인, 학교 폭력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에게 많이 공감했다. 이들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에 고통스러워한다. 필자 또한 그렇다. 그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어른들, 학교 폭력의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나의 가해자들에게’이다.
책 ‘나의 가해자들에게’
책 ‘나의 가해자들에게’에 대해 먼저 소개한다. 책의 시작은 유튜브의 동영상이었다. 학창 시절에 학교 폭력을 당한 어른들의 인터뷰 영상이다. 이는 곧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덧글도 많이 달렸다. 덧글의 내용은 다양했다. 학교 폭력의 피해를 당한 어른, 당하고 있는 학생,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 글. 이렇게 많은 관심에 힘입어 영상이 미처 담지 못한 인터뷰 내용은 책이 되었다. 이게 바로 그 책이다.
사실 필자는 학창 시절의 괴롭힘이 어른이 되어서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지금껏 이들의 이야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피해 학생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한 어른을 신경 쓸리 있을까. 그렇기에 무관심한 상태로 가려져 있었다. 그걸 깬 것이 바로 인터뷰 영상이고 이 책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저마다 상처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들이 어른이니까 괜찮겠지. 학교에 졸업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처는 흉터가 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이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다고 그대로 해결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무기력증. 사람에 대한 낮은 신뢰. 최대한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두는 타자와의 거리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마음속에 이런 상처들이 눈에 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기에 그 따뜻한 연대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그래, 우리들은 모두 그 학교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다.
생존자들
학교 폭력에 납득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크든 작든 학교 폭력이 발각되어 벌을 받는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장난이라고 말한다. 그게 이유의 전부다. 사실 이유라고 말하기에도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일단 학교 폭력에 노출되면 자신을 가해의 원인으로 삼는다. 낮아진 자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언젠가 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왜 자신을 원인으로 돌리는 걸까. 아마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차라리 체념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피해자들은 생존은 위해 자신을 감춘다. 학교 쉬는 시간에는 일부러 잠을 자고, 조별 활동에서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남는 자리를 채운다. 교실 안의 방관자와, 그 방관에 참여하는 교사에게 최대한 눈을 피한다. 그들은 점점 고립된다. 그것이 유일하게 괴롭힘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런 방법만으로는 괴롭힘을 버티기 어렵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아픔을 견뎠을까? 내용을 보면 주변 인물의 손길이 힘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일부 인터뷰 대상자들은 학교 밖에서 가해자 몰래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교 내에서는 도움 한 번 준 적 없는 방관자이지만 바깥에서는 그래도 친구 노릇은 해주었구나 싶어서 필자는 삐딱하게 바라보았는데, 일부는 이런 행동이 아픔을 견디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타인의 손길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음에도, 피해자는 대체로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그들과 가까운 어른인 선생님과 부모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선생님에 대해 두 부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이 악물고 못 본 척하는 부류. 이들은 그냥 봐도 알 수 있는 피해자의 상황을 애써 무시했다. 다른 하나는 학교 폭력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경우. 애석하게도 이 경우도 피해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두 번 가해자를 불러 혼을 내는 걸로 일을 마무리했다. 어쩌다 큰 사건으로 확대되어 징계 처분이 내려져도 가해자들이 받는 벌은 가벼웠다. 이 경우 가해자들의 괴롭힘은 한층 심해졌다. 요컨대 이들은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부모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책에서는 심한 경우 그들이 가정 폭력을 행사해서 피해자가 학교와 가정에서 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부모에게 자신의 피해 상황을 알리지 않고 참는 경우가 많았다.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레짐작하거나, 부모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은 버텼다.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
너도 나만큼 아프기를 바라
인터뷰 대상자 중 일부는 학창 시절 꾸었던 꿈에 대해 말했다. 내용은 가해자들을 잔인하게 응징하는 내용이었다. 이 꿈은 그나마 피해자들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면 학교에 가야 하는 현실에 마주해야 했다. 그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지 않았을까. 학교에 가면 또다시 반복되는 괴롭힘의 일상 속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를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들은 아직도 어릴 적 그때의 아픔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평생 지울 수 없다.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지금도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쌓이면 두통이 온다. 이것이 두통약이 아니라 우울증 약으로 해결된다는 걸 최근 몇 년 전에 알았다. 약을 먹으면 몽롱해진다. 그 순간 괴로운 때를 생각했다. 이유 없이 맞았을 때. 이유 없이 뱉은 침에 맞았을 때. 놀릴 때. 조롱할 때. 비아냥 거릴 때. 그때. 아픈 때.
필자의 개인적인 말로 본문을 마무리해 본다. 나(필자)를 괴롭혔던 가해자들에게, 너희들도 나만큼 아프기를 바라.
이 책 ‘나의 가해자들에게’는 피해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한다. 혹은 어른이 된 피해자들, 즉 생존자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 이 책은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니 말이다. 피해자들에게 말한다. 적어도 우리는 옆에 있다.
- 저자
- 씨리얼
-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
- 출판일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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