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필자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러웠다. 부끄럽지만 학창 시절에 단 한 번도 미술에서 좋은 점수를 따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실기는 최하 점수였다. 결국 점수를 만회하려 필기시험에 올인했다. 그 결과 미술 시간은 언제나 고통이었다. 뭘 한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미술 과목에서 느꼈다.
언젠가 반에 그림 잘 그리는 학생이 몇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성인이 되어 그림을 그리며 산다. 그림 좀 배워볼까 느낀 계기다. 미술을 하며 사는 게 멋졌다. 지금이라면 옛날의 두려움을 느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곧장 그림 서적 몇 권을 샀다. 그뿐이랴. 종이도 연필도 또 지우개도 샀다. 그렇지만 흰 종이를 보자 이전의 공포(이건 성적이 밑바닥일 거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공포였다.)와는 다른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결과 준비만 요란하게 하고 제대로 그림 그리기는 시작도 못했다.
뜬금없이 필자의 사생활을 꺼낸 이유는 책이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 딱 필자를 위한 책이기 때문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책을 알게 된 계기는 다른 책과 좀 다르다. 그냥 검색을 하다가 얻어걸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원래 인터넷 서점 검색으로 이상한 단어들을 쓰고 장바구니에 넣어 놓은 뒤 맘에 드는 걸 샀다.).
언제나 재밌고 신기한 동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는 언젠가 그림 유튜버의 영상((158) 이연LEEYEON - YouTube)을 추천했다. 그게 바로 저자였다. 한 번 볼까 생각했다가 이내 그 유튜버의 영상 리스트를 주르륵 훑었다. 홀린 듯 영상을 봤다. 저자가 팬으로 휙휙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멋있어서 그랬다. 거침없이 내지르는 손놀림으로 멋진 그림 작품을 만드는 사람. 그때부터 필자는 저자의 구독자가 되었다. 그래서 책을 출간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가 유튜버의 팬이라고 해서 유튜버의 책이 재밌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럴 때만 책 고르기에 신중해지다니. 초기에 구매하면 굿즈도 나눠주었다고 한다. 그냥 바로 질러(?) 버릴 걸 그랬다. 책 내용은, 솔직히 필자의 취향에 딱 맞았다. 신중할 필요 따위 없었다.
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은 그림 입문자를 위한 책이다. 다만 소설 작법서 같은, 이론을 나열하는 건 아니다. 구도가 어떻고 시선이 어떻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지식보다 중요한 그림을 그리는 마음가짐에 대한 글이 있을 뿐이다. 책은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다시 다른 그림을 시작하는 때까지 시간 순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서술한다. 그러는 종종 저자가 추천하는 그림 도구라든지 그동안 저자가 살면서 깨달은 인생 경험담이 책에 등장한다. 사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그림 관련 얘기보다 저자의 경험, 생각, 가치관을 말하는 대목에서 이 책에 빠졌다. 이거 사실 그림 권유보다 인생 교훈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림 그리기를 슬슬 권하면서 인생 상담도 자연스럽게 해 내다니.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사실 조금 생각하면 그림과 인생 이야기가 연결되는 이유가 이해된다. 저자의 삶은 그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좋은 때나 힘든 때나 한결같이 그림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할 때 종종 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직업이 뭐니?" 혹은 "취업했니?" 또 혹은 "취업 준비하니?"라는 말을 기성세대가 질릴 정도로 말하는 건 그 때문이다. 직업이 곧 일이고 직업이 곧 자신의 정체성인 게 당연한 시대이다. 그래서 저자가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저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필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깨달았다. 이 사람이 권유한 것은 그림이지만, 저자가 쓴 글에는 그림 권유뿐 아니라 저자의 인생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꼭 한 마디 하고 싶다. '짧지 않은 저자의 인생이 책 한 권에 기분 좋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만일 이 책을 읽는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어떤 독자라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장담한다.
추천 독자
당연히 추천할 사람은 그림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다. 초보자여도 좋고 슬럼프에 빠져 있는 그림 작가들도 좋다. 누구나 읽어도 그림 그리기의 욕구가 샘솟는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자의 추천 그림 도구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자신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굳이 그림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저자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저자도 외부의 권유와 사고를 자신의 것인 양 무조건 받아들이다가 힘들어한 경험이 있다. 가령 교수님의 칭찬을 위해 모범생이 되는 것처럼. 혹은 아무런 생각 없이 타인의(부모님이든 누구든) 의견에 맞추는 것처럼. 저자도 이런 상황에 부딪혀 깨진 적이 있다. 하지만 깨진 곳에서 저자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하고픈 그림을 그리고, 운 좋게(혹은 준비된 자의 결과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저자는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찾았다. 이 정도면 방황하는 청소년, 청년에게 훌륭한 모범이 될 것이다.
- 저자
- 이연
- 출판
- 미술문화
- 출판일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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