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은 없다>
파괴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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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죽은 우리나라 국민이 있다. 그는 칸쿤에 있었다. 그곳은 WTO 각료회의 중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거기 있었다. 칼을 꺼낸 건 순식간이었다. 바리케이드 위로 올라간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배를 갈랐다. 이름은 이경해. 나이는 56세. 한국 농촌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농부 중 한 명. 그는 축산업을 했고, 특히 자연 친화적 축산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산산이 부서졌다. 소고기가 수입 개방되어 값이 싼 외국산 소고기가 수입됐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을 버티지 못했고, 축산업을 그만두었다. 빚도 졌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는 칸쿤에 찾았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울분을 죽음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그에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당시 WTO 각료회의가 개최 중인 곳 인근에서 농산물과 관련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것을 목격한 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는 필연이었다. 세상은 파괴되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평범한 시민들은 죽음 외에 달리 선택지는 없었다. 다만 이경해 씨는 죽음을 조금 더 빨리 맞이했을 뿐이다. 슬픈 것은 그의 죽음은, 외침은, 어떤 반향도 낳지 못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친 지금까지도 말이다.
이 책은 작가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제언을 내용으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이제 성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발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또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 수천의 이경해 씨가 나올 것이다. 그들은 이경해 씨가 그러했던 것처럼 직업을 잃고, 빚을 지고, 터전을 잃고, 결국 죽을 것이다. 이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쓸쓸한 죽음일 것이다.
자연은 왜 우리의 성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 이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특히 냉전이 끝나고,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세계는 단일한 경제체제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독점, 과점, 각종 탈법을 저지르면서 성장했다. 이로써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또 누군가에게는 천국이 시작되었다. 저개발 국가는 노동 착취로 값싼 인력으로 부려 먹힌다. 이들의 노력은 부유한 국가, 그리고 부유층들에게 돌아간다. 소비의 증가, 증가 또 증가. 이러한 증가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지옥을 선사한다. 우리는 이 중 어디에 있는가? 마치 미치광이처럼 소비를 외치는 우리들은 언제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어째서 우리들은 이러한 파괴 활동을 제지하지 않는 것일까?
파괴 활동의 근거는 바로 경제학이다. 경제학은 기업과 부자들의 행태를 정당화한다. 이는 낙수효과라는 유명한 이론에 기반한다. 낙수효과는 성장의 달콤한 과실은 언젠가 아래로 내려간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많은 이들은 이를 믿는다. 하지만 철석같은 믿음의 근간이 사실은 얼음 바닥처럼 얇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경제학이라는 근간이 딱 이와 같다.
경제학은 제대로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없는 학문이다. 경제라는 사회현상을 수의 세계로 표현하고 예측하는 것은 물론 혁신적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 외의 변인들은 통제되었다. 무시되기도 했다. 애초에 모든 변인이 무엇인지 경제학은 생각하지 않는다. 즉,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 원하는 것만 뽑아먹고 나머지는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게 경제학의 밑바탕이다. 이러한 전제가 없다면 경제학의 수적 표현은 불가능하다. 고로 낙수효과라는 것의 바탕이 되는 이론들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근거 위에 서 있을 뿐이다. 실제로 경제의 낙수효과가 제대로 증명된 적은 없다. 전 세계로 시야를 확장하면 낙수효과라는 이론대로 경제 시스템이 움직인 적은 없었다. 인간의 탐욕만 보일 뿐이었다.
성장은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위험은 경고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몰디브가 물에 잠기고, 캐나다는 이상기온으로 온열 질환자 및 사망자가 천정부지로 뛰고, 또 중국에서는 이례적인 폭우로 홍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눈을 가리고 못 본 척, 귀를 가리고 못 들은 척하고 있다. 사실 정말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작가의 주장을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근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술 진보를 통한 환경 보호가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단호히 이를 반박한다. 그는 제번스의 역설, 리바운드 효과를 든다. 기술이 발전하여 효율이 높고, 환경에도 더 나은 물건들이 나오게 된다고 해도, 결국 우리들의 소비가 증대되어 실질적인 환경 오염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들의 행동을 요청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들의 작은 행동들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힘은 약하지만, 집단의 힘은 강하다.
이 책은 과격한 주장인 듯 보이지만, 그 근거는 절대로 과격하지 않다. 오히려 합리적이다. 자연환경의 파괴,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한 과소비, 불평등, 불합리 등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이 현 시스템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밝힌다. 따라서 처음에는 반대하던 독자들도 점점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환경 파괴가 심각한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정말로 올바른가? 우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시스템이 사실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방법이 있지는 않은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바꿀 수 있는 건 우리의 행동뿐이다.
- 저자
- 마야 괴펠
- 출판
- 나무생각
- 출판일
- 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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