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얼굴 없는 인간 -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 (조르조 아감벤, 효형출판)

작은독서가 2022. 1. 16. 16:58

<새로운 자유를 생각하자>

‘생존 외에 다른 인류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어떤 것일까?’

책 '얼굴 없는 인간' 전자책 표지 사진


이번 책 ‘얼굴 없는 인간’은 조르조 아감벤이 많은 비판을 듣는 와중에도 썼던 글들의 모음집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그의 접근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우리들을 비판하고, 무의미한 생존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지를 묻는 그의 글에서 우리는 변명할 수밖에 없다.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하고, 감내해야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자유에 대한 주장은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것이 설령 생존을 위한 국가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누구인가? 이탈리아의 저명한 학자이다. 작가는 팬더믹이 벌어질 당시 이탈리아에 있었다. 지금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이탈리아는 팬더믹 초기에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당시 신문을 찾아보면 이탈리아는 의료 붕괴에 이르는 절망적인 순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의료진이 부족해서 학생들을 투입하고도 모든 병자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버틸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 이탈리아 당국은 극단적인 통제 정책을 실시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부의 조치를 수용했다. 매일 늘어나는 사망자와 감염자 숫자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대구의 신천지 교인 발 확진자 폭증을 겪은 필자도 그런 공포를 느꼈다. 그보다 더 심한 상태에 놓였던 이탈리아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조르조 아감벤은 같은 이탈리아에 사는 와중에도 자유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생존 외에 다른 인류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어떤 것일까?’라는 말을 통해 생존만을 위해 다른 중요한 가치를 버리는 현재 상황을, 사람들을 비판했다. 이 글을 쓴 시점에서 이탈리아 국민들은 말 그대로 팬더믹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주장이 다른 학자들의 많은 비판에 직면한 건 당연했다. 다른 가치들이 소중하다고 해도 생존할 수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중요한 가치관을 일거에 내다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어떻게 쌓아 올린 가치관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손에서 놔 버린단 말인가. 당국의 조치들은 전례가 없었다. 자유를 유린하는 것은 2차 세계 대전 당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특히 그는 이 조치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유권을 침해하는 조치들이 정해진 절차들을 무시한 채 실시되었다. 비록 긴급한 상황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 주저함 없이 절차를 위반한 건 그에게 충격적이었다.

이건 공포에서 비롯된 무의식적인 수용이었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죽음의 공포에 질려 정부의 조치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자유를 그냥 놔 준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그러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국민들이 정부보다 먼저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 코로나 19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중국 봉쇄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타 국가들의 코로나 19 감염자 수가 급증하자 이들 나라에 대한 입국 금지를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대구 신천지 교인 발 집단감염 사건으로 확대되었을 때 극대화되었다. 대구를 봉쇄하라는 여론이 일었고, 주요 신문에서도 이와 관련된 주장을 다루었다.

몇 년 뒤, 한국의 조치들은 점차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폭발한 계기는 백신 패스 정책이다. 이는 사람들의 공포가 누그러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르조 아감벤은 삶을 잃는다는 것,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독재 권력이 싹틀 수 있고, 또 ‘리바이어던’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코로나 19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희석된 한국 사회에서는 다시금 자유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는 우리가 주목하고 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현재의 백신 패스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아직 필자는 팬더믹에 대한 임시조치에 찬성한다. 또한 백신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하는 주장, 정부의 방역 정책이 정치적인 방역이라는 주장, 그리고 현재의 대책들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다만 이 책 ‘얼굴 없는 인간’을 통해 방역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현재 우리는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는 것은 맞다. 누군가 다른 나라를 예로 들면서 우리들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타국이 어쩌느니 하면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유는 측량할 수 없는 오롯이 하나일 뿐인 가치다. 유무의 문제일 뿐,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유를 제한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자기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생명을 위해 아주 잠깐 자유가 제한되는 정책을 우리가 감내하기로 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대안, 더 나은 방향을 찾는다면 곧바로 버릴 임시조치로서 현 상황을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이 상황은 언젠가 끝낼 것이고, 다시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예전처럼 말이다.

조르조 아감벤의 책은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 팬더믹은 이제 엔데믹으로의 전환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일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임시 조치들,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를 넘어서는 대안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두려움을 근거로 만들어진 방책들은 그것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독재로 빠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잊는다면 잃어버린다. 언젠가 다시 누릴 자유를 위해 준비하자.


얼굴 없는 인간(양장본 HardCover)
‘호모사케르’를 통해 근대 민주주의의 속성을 고찰하여 근대적, 현대적 관념의 주권, 정치, 생명을 이론화한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참신한 문체와 독특한 시선으로 언제나 사회의 폐부를 찔러오던 그는 2020년 온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아감벤은 디지털 기술로 통제하는 전체주의의 조짐을 읽어 내고 괴물 리바이어던이 된 국가가 만드는 ‘예외상태’의 위험을 지적했지만, 그의 주장은 왜곡된 채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과연 아감벤은 마스크 벗기 운동을 주장하는 엉뚱한 노학자였을까. 아감벤은 말한다. 방역과 통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생명의 보호가 바로 그 조치로 인해 파괴될 수 있다면 이 모든 비상 대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리적 생명의 수호가 우리의 사회적 삶을 파괴할 수 있다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이 책에는 와전된 그의 주장 외에도 팬데믹으로 촉발된 ‘거대한 전환’과 인류 문명에 관한 고찰이 담겼다. 이탈리아어판 『A che punto siamo』에 수록된 꼭지 외에도 한국어판에 처음으로 담기는 글들까지, ‘보건 보안’의 명목으로 반론과 이견이 묵살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아감벤의 절박한 호소가 문명에 관한 통찰을 담은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두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아감벤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의 근원을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통해 구체화하고자 하였고, ‘집이 불탈 때’에서는 최근 대두된 인류세(人類世)의 관점에서 팬데믹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시적인 문장으로 은유하였다. 그리고 ‘가이아와 크토니아’에서는 보다 넓은 시야로 신화적이고 다소 지질학적인 관점에서, 인류가 아닌 생명의 단위에서 문제를 고찰하였다. 이 글들에서 아감벤의 사유는 시대를 아우르고 문예사조를 넘나든다.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는 문장들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질서의 변화를 보다 냉철하게 그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모두가 초조하게 불안을 안고 일상의 회복만을 바랄 때,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옳은지 누군가는 되물어야 마땅하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그려 보는 지금이야말로 아감벤의 고찰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저자
조르조 아감벤
출판
효형출판
출판일
202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