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지성주의와 기독교의 관계>

반지성주의를 들으면 막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들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실제로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 ‘반지성주의’의 저자 모리모토 안리는 다른 관점을 이야기한다. 이 사상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이 반지성주의는 대중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지성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를 주장하는 사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타락한 지성에 대한 각성의 촉구를 요하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반지성주의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측면을 중심으로 그 기원과 발전에 대해 서술한다. 그 목적은 반지성주의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장소적으로 미국으로 이 논의를 국한시킨다. 정확히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지는 반지성주의의 역사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반지성주의는 무엇인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지성주의’에 대한 책이다. 일반 대중은 이 개념을 지성에 반하는 사고방식, 행동 따위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이를 약 없이 키우겠다는 ‘안아키’ 따위를 볼 때 우리는 반지성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반지성주의는 대중이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저자 모리모토 안리가 말하는 반지성주의는 지성 그 자체를 반대하는 사상이 아니다. 자기 성찰이 없는 지성, 기득권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지성에 대한 반대이다. 즉 지성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을 감시하고,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연에 막고 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지성이 일반 계층이 지닌 전유물로써 권위의 상징이라는 것과 반대로 반지성주의는 ‘평등주의’를 신봉한다.
이것만 보면 반지성주의가 정말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지성주의의 부정적인 면도 물론 존재한다. 반지성주의는 과도한 평등주의를 통해 사람들의 지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요컨대 합리적인 지성까지 불편하게 여기고 비뚤어진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안아키’의 경우가 그 사례이다. 의사들이 의학 지식을 독점하면서 이들을 의심을 하는 부모들이 생겼다. 일부 부모들은 의사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학 지식을 사용한다고 여긴다. 그런 망상에 사로잡힌 일부 부모들은 서로 모여 ‘평등’하게 이상한 의학 지식을 나누면서 서로의 아이를 치료(?)한다.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의 부작용이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반지성주의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반지성주의는 무턱대고 좋은 개념도 아니며, 무조건 나쁜 개념도 아니다. 따라서 대중은 이 사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신앙부흥운동과 반지성주의

이 책은 전 세계를 범위로 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에 국한하여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분석한다. 미국 반지성주의의 근원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있다.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오히려 극단적인 지성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을 휩쓸었다. 이건 청교도의 영향이 컸다.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탈출한 청교도들은 지성주의를 신봉했다. 일례로 이들은 학업 수준이 대단히 높았다. 그들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이후 곧바로 건설한 것이 바로 대학, 그것도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신앙부흥운동이 반지성주의를 촉발시켰다. 애초에 개신교의 모토는 성서를 통해 신과 신도가 직접 소통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목사라는 직위를 지적 교양을 지닌 사람들이 전유물로 한정했다. 극단적 지성주의의 폐해였다. 이러한 권위와 지성의 결탁이 신앙부흥운동을 촉발시켰다. 이전의 고리타분한 목사들과는 달리 신앙부흥운동을 주도한 설교사, 목사들은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설교로 신앙을 설파했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이 운동은 또한 절대적인 평등주의가 뒷받침했다. 이전까지 지성을 지닌 목사들의 지식을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신앙에서 시작하였지만 상업 권력, 정치권력의 침투로 변질되었다. 정확히는 신앙에 상업이 섞였다. 상업의 기술들은 신앙부흥운동에서 사용되었다. 이들은 마치 신앙을 사람들에게 팔아치우는 외판원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설교는 이전까지 하층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존의 교회가 밑바닥 계층을 신경 쓰지 않는 동안 이들의 자극적인, 마치 서커스와 같은 설교는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주도하는 영웅이 항상 등장했다. 여러 인물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전부 신앙부흥운동으로 탄생한 자들이었다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들 영웅들은 신앙에 대한 공식적인 지위보다는 자신의 개인기로, 덜 자극적인 것에서 더욱 자극적으로, 상업 자본의 결탁, 정치권력과의 야합을 특징으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 영웅들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미디어에 나오는 목사들은 그 정점을 찍었다. 이들은 수많은 돈을 쓸어 담으면서 제 화술로 사람들을 꾀어내고 있다.
반지성주의의 현재와 필요성

반지성주의는 긍정적인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KKK 단, 트럼프 주의, 기타 극단적인 단체들의 등장과 활동은 미국 반지성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반지성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지성은 언제나 성찰을 필요로 한다. 지성은 감시하지 않으면 언제나 기득권과 결탁하여 권위주의를 심화시킨다. 권력자에 맞서는 지식인은 적지만, 권력자에게 순종하는 지식인은 지금 순간에도 수도 없이 많다. 이 타락한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일반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반지성주의밖에 없다. 권위주의가 아닌 평등주의, 소수의 전유물인 지성보다 반성하는 모두의 지성을 위해서는 반지성주의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반지성주의의 딜레마이다.
우선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저자 모리모토 안리는 이 책 ‘반지성주의’를 통해 반지성주의 중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역사와 그 발전, 그리고 그 시대에 등장한 영웅들을 조망한다.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기원은 기독교의 신앙부흥운동이다. 초창기 아메리카 식민지를 세운 청교도들은 극단적인 지성주의를 신봉했다. 이 기조는 시간이 흘러 변질되었다. 지성은 순수함을 잃고 권력자들, 지식인들에게 붙어 그들의 무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부패가 모여 신앙부흥운동을 촉발했다.
신에 대한 평등, 즉 평등한 만남을 추구하는 신앙부흥운동은 지성인들을 창구로 하는 청교도 세력들이 봤을 때 상당히 ‘천박’하고 교양 ‘없는’ 집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미국 사회의 평등을 이끌어냈다. 이후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한 이런 부흥운동은 미국 사회의 평등함을 널리 알리고 지성의 타락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반지성주의는 변질되어 부정적인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정리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 책을 읽은 뒤 필자는 몇 가지 불만점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우선 이 책이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국한하여 반지성주의의 탄생과 발전을 다루고 있다. 이는 ‘반지성주의’라는 책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반지성주의가 미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현대의 반지성주의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저자 모리모토 안리는 이 책을 ‘미국 반지성주의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이 말은 현대의 반지성주의의 문제에 대해 그다지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의 반지성주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를 이는 적으리라. 그렇기에 이 책이 미국에서의 반지성주의 발전사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현대의 반지성주의 내용을 개략적으로만 다룬 것은 아쉽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을 제하고 보면 대단히 유익한 책이다. 반지성주의와 기독교 신앙부흥운동을 연결한다는 관점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신선했다. 미국 기독교 역사 지식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그렇지 않더라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반지성주의가 다른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정치 분야와 관련하여 반지성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책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 저자
- 모리모토 안리
- 출판
- 세종서적
- 출판일
-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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