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책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치매 환자를 이해하는 지침서’이다. 이는 치매 유무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치매에 대한 사고방식,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바꾸도록 일조한다. 현재, 치매는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란 이미지는 다 가지고 있다. 이제 치매는 곧 인생의 끝이나 다름없다.
저자 ‘웬디 미첼’은 치매 환자이다. 이른 나이인 50대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2014년 진단을 받은 그녀는 이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좌절했다. 활발히 활동할 나이대의 저자에게 치매는 악몽과 같았으리라. 하지만 여타 치매 환자의 경로와는 다른 저자만의 삶을 선택했다. 자신이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치매 진단 이후 아직도 자신의 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그녀는, 여전히 다양한 활동을 한다. 예컨대 이 책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도 적극적인 삶의 결과물이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는데 그렇다고 주체적인 삶이 치매라는 병을 낫게 하거나 호전시켰다는 건 아니다. 그녀의 삶 또한 치매로 인해 많이 변했다. 이제 그녀는 이전에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신발끈을 묶는 것도 이제 못 하며 음식을 만드는 것도 힘들다. 더러는 산책을 하던 중 알던 길을 잊어버려서 거리를 헤매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주체적 삶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이 책의 목적은 그 이유를 탐색하는 것이다. 치매 환자도 사람이며 따라서 비인간적 통제 위주의 간병을 버리고 환자의 주체적인 삶을 꾸리도록 도와야 한다. 자유 그 자체는 인간의 본성이며 동시에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도 인간이다. 그걸 우리는 무의식 중에 종종 잊는다.
책의 내용을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순서대로 치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반인과 다른 치매 환자들의 오감 인식 방식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후 환자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감정을 떠올리고 받아들이며 표출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 이유에 대해 살핀다. 마지막으로 치매 환자가 느끼는 자아 존중감의 결여와 이에 대한 박탈감을 짚으면서 인간과 자유, 치매 환자와 자유 그리고 주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감각기관이 발하는 신호, 즉 오감은 치매 환자는 병을 기점으로 현저히 변한다. 가령 이전까지 좋아했던 것도 싫어지고, 더러 감각이 예민해지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감정도 치매 환자는 발병 이전과는 다르다. 환자의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감정을 잃거나 하나의 감정이 증폭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예컨대 저자는 분노라는 감정이 사라진 듯하다고 책에서 서술한다. 화를 내야 할 때, 감정이 분노로 연결되지 않고 슬픔으로 연결되는 바람에 이제는 머리로는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도 감정은 분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반면 저자가 인터뷰한 친구들의 이야기 중에는 분노 감정이 늘어 이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심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양한 예시들이 있으나 적어도 감정이 이전과 다르게 변한다는 건 사실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일반 사람들은 치매 환자들을 이제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실제로 그리 만든다. 그런데 애당초 치매 환자처럼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치매 환자처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자신의 감각 수용과 감정 따위가 변하기 마련이다. 기억력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떨어진다. 치매 진단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건 변한다.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치매 환자와는 달리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또한 감금당하거나 할 일을 빼앗기지도 않는다. 반면 치매 환자는 다르다. 자신의 행동을 모두 통제받고, 구속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치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다면 환자의 자유를 부득이 억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전까지, 적어도 환자 개인이 최대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점에도 우리는 치매 환자를 그저 통제하려고만 한다.
그 결과로 저자는 치매 환자는 치매 진단만으로 환자의 인격이 크게 훼손된다고 말한다. 사실 치매 진단을 받기 직전과 직후의 환자 상태가 얼마나 다르겠는가. 하지만 진단을 듣기 전의 주체적인 인간은, 치매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마치 저자의 경험처럼. 가령 병원에서 간호사는 그녀가 직접 말할 수 있는 순간에도 딸의 얼굴만을 보고 대화한다. 덧붙여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도 마치 아기에게 하는 양 지나친 배려로 환자가 하던 일을 빼앗아 처리하려 한다. 이 순간 환자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주체적인 자아로 환자를 대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 이유는 뻔하다. 착각 때문이다. 치매 환자들은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제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여생을 누릴 수 없다. 이런 착각 탓에 치매 환자는 과도한 배려나 억압, 둘 중 하나를 사회 속에서 매번 느낀다. 선의는 좋다. 허나 이는 치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그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껴지리라.
치매에 걸렸다고 그 사람의 인권이 홀연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또 모든 치매 환자가 말기 환자는 아니다. 비교적 치매 증상이 덜한 초, 중기 환자들의 경우에는 약간의 배려만 있다면 홀로 생활할 수 있고 주체적으로 삶을 꾸릴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자를 보라. 8년 동안 혼자서 산 치매 환자인 저자의 존재가 곧 증거다. 이들은 직접 무언가를 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자 ‘웬디 미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치매 환자와는 달라 보인다. 치매라고 하면 누구나 요양병원에서 반 강제적으로 구금된 상태로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저자는 치매 진단을 받은 지 8년이 되었지만 홀로 살고 있으며, 집필활동은 물론이거니와 치매 환자들의 모임, 여러 강연회 연사로 참여, 그리고 치매 관련 학술 연구 참여 등 다채로운 활동을 진행한다. 우리의 편견,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치매와 관련된 긍정적인 롤 모델 중 하나이다.
누군가는 저자의 이런 삶을 무모하고 또 위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녀는 치매 환자로 병에 걸리기 전의 삶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산다. 길을 종종 잃었고, 기억은 뒤죽박죽이 될 때가 많으며,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못한다. 기타 수많은 아지랑이 피는 나날들이 있고(정신적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을 저자는 그리 표현한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잊지 말자. 그럼에도 혼자서 살 수 있다. 치매라고 해서 곧바로 주체성을 버릴 필요는 없다.
저자의 도전은 계속된다. 책의 마지막, 저자는 평범한 사람도 도전하기 힘든 스카이다이빙에 나선다. 주변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피부로 느끼면서 그녀는 현재의 편견, 치매 환자는 주체적일 수 없다는 편견을 몸소 느낀다. 한편 딸들과 담당 의사의 격려는 미래의 긍정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저자가 원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치매 환자를 한 명의 인격체로 바로 보는 날이 오는 날 말이다. 그런 날은 꼭 올 것이다. 느리지만 치매 환자들의 인권이 신장하고 있는 현재,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해도 되지 않을까. 결국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무사히 착지한 주인공처럼 말이다.
추천 독자
-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 친지, 혹은 간병인 등.
-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들
- ‘치매 걱정’이라는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치매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 저자
- 웬디 미첼, 아나 와튼
- 출판
- 문예춘추사
- 출판일
-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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