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선생님, 세상을 구하다>
나, 외계 항성계에서 깨어나다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인기가 대단하다. 출간 후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SF소설을 추천할 때 꼭 언급된다. 특히 이 책은 저자 ‘엔디 위어’의 여타 작품들처럼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다. 그의 첫 작이자 영화화된 ‘마션’에 푹 빠졌던 필자에게는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마션’은 SF소설 중 수작으로 꼽힌다. 극한의 상황에서 위트를 잃지 않는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고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저자의 전작 ‘마션’이나 ‘아르테미스’를 압도한다. 더 커진 스케일의 사건, 더 매력 넘치는 등 장인물의 존재 덕분이다. 엔디 위어의 전작이 태양계 내부였던 반면 이 작품은 태양계 바깥의 다른 항성계를 배경으로 한다. 더불어 이야기의 중심 사건도 ‘인류’의 존속 그 자체를 다룬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학교 과학 교사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력 때문에 - 학계 연구자 경력 - 우연히 프로젝트 헤일메리 - 인류 존속을 위한 프로젝트 명칭 - 에 발을 담근다. 인 류가 당면한 문제는 아스트로파지라 명명한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태양 에너지를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 에너지가 줄어들자 인류는 곧 위기에 봉착한다. 지구 생태계 붕괴, 아사자 증가, 사회적인 갈등 증가 기타 등등. 문제는 위기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멸망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하지만 우연히 인류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낸다. 바로 아스트로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항성계를 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원래라면 별 의미 없는 사실이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스트로파지 덕분에 외부 항성계에 도달할 수 있는 극도로 효율적인 엔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항성계에서 직접 가서 해결방법을 찾는다는 선택지가 생겼다. 그 우주선에 라일란드 그레이스가 탑승한다. 우주 공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멤버로 선택되어서. 이것이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아쉬운 개연성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SF소설로서만 봐도 훌륭할 뿐 아니라 그저 이야기 자체만 봐도 뛰어나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장점은 다음 몇 가지이다. 우선 매력적인 등장인물. 작가 ‘엔디 위어’의 전작을 읽어본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행동, 그 행동을 묘사하는 작가의 글솜씨는 전체적으로 낙천적이고 유쾌하 다. 이는 소설 ‘마션’에서도 그러한데, 두고두고 회자되는 ‘마션’의 첫 문장을 보면 즉각 이해할 수 있다. 서두에 욕을 박아 넣는 대담한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보고 웃지 않을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라일란드 그레이스’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더불어 인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일으키는 ‘에바 스트라트’. 기타 지 구의 등장인물들은 단 한 명도 뻔한 인물이 없다.
다음으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그로 인한 탁월한 긴장감 유지가 있다. 저자 ‘엔디 위어’가 쓴 ‘마션’의 ‘마크 와트니’가 그랬듯 이 책도 ‘라일란드 그레이스’가 거진 혼자서 아스트로파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과 거 회상을 제외하면 우주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 한 명을 독자가 빤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단 거다. 당연히 웬만큼 실력이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등장인물 한 명만 존재하는 이 상황에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작가 ‘엔디 위어’는 그냥 평범한 작가가 아니다. 이미 그는 ‘마션’에서 이 일을 훌륭히 해 냈다. 우주는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문제들, 그것도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안다. 우리의 영웅 ‘라일 란드 그레이스’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나온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곧이어 터져 나온다.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작가는 SF장르 특유의 과학적 정합성으로 개연성을 충족한다.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없다. 문제 하 나 하나를 풀어낼 때마다 독자는 긴장한 채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소설이 장르의 특성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SF소설 중 과학적인 이론을 충실히 반영하 기에 과학에 별 관심이 없다면 읽다가 지칠 수 있다. 큰맘 먹고 도전했지만 그래서 중도 하차하는 인원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특히 최근 한국 도서 시장에서 유행하는 자칭 ‘소프트 SF’라는 소설 장르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딴에 SF라 자칭하며 과학적 정합성보다 분위기나 비스름하게 맞춘, 뭔가 큰 게 있어 보이는 듯 쭉정이 같은 글을 많아졌고, 이를 읽는 사람도 많다. 그런 걸 읽다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으면 분명히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거나 각종 이유를 붙여 책을 집어던질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세세한 사건 사고는 과학적 인과관계가 확실히 드러나지만 이야기 전체적으로는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갑자기 뿅 등장한 외계 생물 아스트로파지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해 인류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전개가 특 히 그렇다. 문제는 이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대 사건이라는 것이다. 대중소설은 어쨌든 강렬한 사건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정도 것이어야 지. 눈 뜨고 일어나니 우연히 외계 생명체가 있고, 우 연히 보니까 이게 인류 멸망을 시킨다고 하고, 또 우연히 아스트로파지를 연구하니 외계 행성에 갈 수 있는 신물질이며, 확인해 보니 외계 항성계 중 하나가 아스트로파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아스트로파지로 엔진을 만들면 비 교적 단기간에 갈 수 있다. 물론 이 정도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면 현대 과학 기술로 소설 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애당초 우리는 지금 태양계 바깥은커녕 달 유인 탐사도 어렵다. 그래도 아 쉬운 건 작가 ‘엔디 위어’가 SF 소설가 중에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재미있다. 전체적인 설정이 작위적이지만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적어도 한국에서 한창 유행 중인 SF소설들과 비교했을 때도 궤를 달리 할 정도로 잘 쓰인 글이다. 만일 SF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곧장 이 책을 추천할 만큼 말이다.
- 저자
- 앤디 위어
-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
- 출판일
- 20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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