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알에이치코리아)

작은독서가 2023. 2. 19. 18:57

<과학 선생님, 세상을 구하다>

책 &#39;프로젝트 헤일메리&#39; 전자책 표지 사진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 전자책 표지 사진

나, 외계 항성계에서 깨어나다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인기가 대단하다. 출간 후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SF소설을 추천할 때 꼭 언급된다. 특히 이 책은 저자 ‘엔디 위어’의 여타 작품들처럼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다. 그의 첫 작이자 영화화된 ‘마션’에 푹 빠졌던 필자에게는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마션’은 SF소설 중 수작으로 꼽힌다. 극한의 상황에서 위트를 잃지 않는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고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저자의 전작 ‘마션’이나 ‘아르테미스’를 압도한다. 더 커진 스케일의 사건, 더 매력 넘치는 등 장인물의 존재 덕분이다. 엔디 위어의 전작이 태양계 내부였던 반면 이 작품은 태양계 바깥의 다른 항성계를 배경으로 한다. 더불어 이야기의 중심 사건도 ‘인류’의 존속 그 자체를 다룬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학교 과학 교사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력 때문에 - 학계 연구자 경력 - 우연히 프로젝트 헤일메리 - 인류 존속을 위한 프로젝트 명칭 - 에 발을 담근다. 인 류가 당면한 문제는 아스트로파지라 명명한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태양 에너지를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 에너지가 줄어들자 인류는 곧 위기에 봉착한다. 지구 생태계 붕괴, 아사자 증가, 사회적인 갈등 증가 기타 등등. 문제는 위기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멸망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하지만 우연히 인류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낸다. 바로 아스트로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항성계를 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원래라면 별 의미 없는 사실이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스트로파지 덕분에 외부 항성계에 도달할 수 있는 극도로 효율적인 엔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항성계에서 직접 가서 해결방법을 찾는다는 선택지가 생겼다. 그 우주선에 라일란드 그레이스가 탑승한다. 우주 공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멤버로 선택되어서. 이것이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아쉬운 개연성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SF소설로서만 봐도 훌륭할 뿐 아니라 그저 이야기 자체만 봐도 뛰어나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장점은 다음 몇 가지이다. 우선 매력적인 등장인물. 작가 ‘엔디 위어’의 전작을 읽어본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행동, 그 행동을 묘사하는 작가의 글솜씨는 전체적으로 낙천적이고 유쾌하 다. 이는 소설 ‘마션’에서도 그러한데, 두고두고 회자되는 ‘마션’의 첫 문장을 보면 즉각 이해할 수 있다. 서두에 욕을 박아 넣는 대담한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보고 웃지 않을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라일란드 그레이스’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더불어 인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일으키는 ‘에바 스트라트’. 기타 지 구의 등장인물들은 단 한 명도 뻔한 인물이 없다.

다음으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그로 인한 탁월한 긴장감 유지가 있다. 저자 ‘엔디 위어’가 쓴 ‘마션’의 ‘마크 와트니’가 그랬듯 이 책도 ‘라일란드 그레이스’가 거진 혼자서 아스트로파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과 거 회상을 제외하면 우주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 한 명을 독자가 빤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단 거다. 당연히 웬만큼 실력이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등장인물 한 명만 존재하는 이 상황에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작가 ‘엔디 위어’는 그냥 평범한 작가가 아니다. 이미 그는 ‘마션’에서 이 일을 훌륭히 해 냈다. 우주는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문제들, 그것도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안다. 우리의 영웅 ‘라일 란드 그레이스’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나온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곧이어 터져 나온다.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작가는 SF장르 특유의 과학적 정합성으로 개연성을 충족한다.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없다. 문제 하 나 하나를 풀어낼 때마다 독자는 긴장한 채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소설이 장르의 특성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SF소설 중 과학적인 이론을 충실히 반영하 기에 과학에 별 관심이 없다면 읽다가 지칠 수 있다. 큰맘 먹고 도전했지만 그래서 중도 하차하는 인원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특히 최근 한국 도서 시장에서 유행하는 자칭 ‘소프트 SF’라는 소설 장르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딴에 SF라 자칭하며 과학적 정합성보다 분위기나 비스름하게 맞춘, 뭔가 큰 게 있어 보이는 듯 쭉정이 같은 글을 많아졌고, 이를 읽는 사람도 많다. 그런 걸 읽다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으면 분명히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거나 각종 이유를 붙여 책을 집어던질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세세한 사건 사고는 과학적 인과관계가 확실히 드러나지만 이야기 전체적으로는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갑자기 뿅 등장한 외계 생물 아스트로파지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해 인류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전개가 특 히 그렇다. 문제는 이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대 사건이라는 것이다. 대중소설은 어쨌든 강렬한 사건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정도 것이어야 지. 눈 뜨고 일어나니 우연히 외계 생명체가 있고, 우 연히 보니까 이게 인류 멸망을 시킨다고 하고, 또 우연히 아스트로파지를 연구하니 외계 행성에 갈 수 있는 신물질이며, 확인해 보니 외계 항성계 중 하나가 아스트로파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아스트로파지로 엔진을 만들면 비 교적 단기간에 갈 수 있다. 물론 이 정도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면 현대 과학 기술로 소설 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애당초 우리는 지금 태양계 바깥은커녕 달 유인 탐사도 어렵다. 그래도 아 쉬운 건 작가 ‘엔디 위어’가 SF 소설가 중에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재미있다. 전체적인 설정이 작위적이지만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적어도 한국에서 한창 유행 중인 SF소설들과 비교했을 때도 궤를 달리 할 정도로 잘 쓰인 글이다. 만일 SF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곧장 이 책을 추천할 만큼 말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 용어로, 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작품 속 우주선의 이름인 ‘헤일메리호’도 지구를 종말로부터 구하기 위한 마지막 역전을 바라는 마음에 지어졌다. 주인공이 긴 수면 끝에 눈을 뜬 곳은 우주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우주선 헤일메리호에 탄 동료들은 모두 죽고 혼자가 된 상황이다. 헤일메리호를 샅샅이 뒤진 끝에,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인류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자, 우주 한복판에서 죽을 예정인 과학자였다는 것을. 소설 속 지구는 태양의 온도를 떨어트리는 미지의 생명체 ‘아스트로파지’ 로 인해 멸망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주인공은 그 아스트로파지를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우주 출장을 오게 된 것이다. 다만, 기술적 한계로 주인공은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해결책만 지구로 보낸 후 우주에서 홀로 죽을 운명이었다. 즉, ‘편도행 헤일메리호’의 일원으로 우주에 왔다. 그런데 잠깐, 우주선 계기판에 무언가 이상한 신호가 잡힌다. 기억을 되찾고 인류를 구하기도 바쁜데 갑자기 외계인의 등장이라니? 과연 그는 지구 구하기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죽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아.” SF 역사상 가장 눈부신 결말을 그린 대서사시, 평범한 선량함이 두 인류를 구하다! 열다섯 살 때부터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일하며 업계에서 ‘천재’로 불렸던 앤디 위어. 그는 장기인 뛰어난 과학적 지식을 소설에서도 십분 활용한다. 앤디 위어가 현존하는 물리적 법칙을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작품을 썼다는 점은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오일러 공식부터 공기역학, 골디락스 존까지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그에 못지않은 장점을 꼽자면 검증된 ‘페이지터너’라는 점이다. 작가가 과학 분야와 소설적 재미를 얽어내는 솜씨는 가히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끝없이 위기가 닥치고 이를 해결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그 스케일은 장대하다. 독자가 이 작품을 손에서 놓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 위기라는 심각한 분위기와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농담을 던지는 주인공과 문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작가 특유의 낙관론 덕분이다. 그렇다면 그 낙관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앤디 위어는 “저는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가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항상 인류에 대해 굳게 믿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고, 구급차가 지나가면 길을 비켜주는 이런 일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서로를 돕기 위한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거든요. 넓은 시야로 본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렇듯 그의 소설이 잘 읽히는 이유는 비단 잘 짜인 이야기와 위트 넘치는 문장력뿐만 아니라, 작은 선의로 가득 찬 미래에 대한 믿음 덕분일 것이다. 작은 선의가 주요 키워드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소수의 영웅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 자리에서 작은 선의를 가지고 지구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을 뿐이다. 해답을 찾기 위한 우주선 제작에 미국, 소련, 러시아, 중국 등이 국가 상관없이 한자리에 모여 계획을 세우는 장면을 보면, 우주에 나가 외계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뭉클한 감정마저 든다. 중학교 선생님인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작은 행동은 지구를 구하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이 소설은 평범하고 작은 선량함이 불러온 범우주적인 구원의 이야기인 셈이다. 소박함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구원을 이루는 그 눈부신 순간을 꼭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작은 선의 역시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속삭임을 듣길 바란다.
저자
앤디 위어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2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