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제2차 세계대전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있어 화수분과 같아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고, 또 쏟아지고 있다. 이번 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그렇다. 책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이다. 다만 이야기는 전쟁터 한복판의 치열한 싸움이 없다. 전투를 원한다면 이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줄거리는 베를린에 살던 여인 ‘로자 자우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겪은 일이다. 그녀는 베를린 공습으로 살던 집이 파괴되고 같이 있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잃었다. 이후 신혼 생활 중 훌쩍 전쟁터로 떠나버린 남편이 살았던 시댁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은 독일의 평범한 시골 동네이다. 전쟁과는 연이 없어 보이는 마을. 하지만 전쟁은 그녀를 쫓아왔다. 히틀러의 친위부대와 명령으로. 그녀가 받은 명령은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검식’하는 일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필 소위 ‘늑대 소굴’로 불린 히틀러의 산채 주변에 시댁이 있었다. 그녀는 마을의 다른 여인들과 검식 장소로 쓰이는 학교로 매일 출퇴근을 시작한다. 이후 로자 자우어는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
주인공 ‘로자 자우어’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다. 식사 검식 업무는 실재했다. 여성들이 그 일을 맡은 것도 사실이다. 당시 히틀러에 의해 차출된 여성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걸었다. 독이 들었을지 모를 음식을 먹는 건 공포였다. 한편 군인, 특히 남성들도 목숨을 건 전투를 치렀다. 방식은 달랐지만 양쪽 다 생존의 욕망과 극한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만 전투가 더 극적이었던 이유로 검식 업무는 역사에서 잊혔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 대상의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덜 극적인 일도 점차 조명되었다. 이 책이 그 결과다. 검식반 여성들도 전쟁으로 인한 내적, 외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전쟁이 여성들에게 미친 트라우마는 책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아이만 남은 과부가 된 여인. 남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아이와의 불륜으로 풀어내려는 유부녀. 그 연장선상으로 불륜을 통해 가진 아이를 낙태해 몰래 땅바닥에 파묻는 여인. 똑같이 남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그에 더해 낯선 곳에서 겉도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그래서 가정 있는 유부남과 불륜을 하는 주인공.(물론 상대 남성도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쟁 중 후반기 패색이 보이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전쟁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욱 광적으로 히틀러에 몰두하는 여인. 아니면 그저 국가의 세뇌가 잘 먹혀들어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히틀러를 향한 공경인지 연심인지 알 수 없는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에 빠진 여인들. 이렇게 미치거나 미처 가는 전쟁 상황에서 여성들이 보이는 행태는 전쟁이기에 벌어지는 끔찍한 광경이다.
이 책의 특별함은 여성이 전쟁 트라우마의 중심인물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전시에 후방에 있는 건 대부분 여성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데 주력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성은 대부분 전장으로 나가 아주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이뿐이었다. 한편 저자가 의도적으로 여성 이야기에 집중했을 수도 있겠다. 이제까지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로 남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그 반발로 저자가 전시의 여성들을 집중 조명하였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속내는 알 수 없다. 다만 여성이 그저 피해자로 등장해 소모되는 전쟁 이야기에서 벗어나 여성을 중심에 두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플러스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 속의 사건이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주인공의 불륜 상대인 치글러의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끊어진다.(정말 이야기가 뚝 끊긴다. 내 책에 문제가 있는가 고민했다.) 또 같은 검식원으로 주인공이 마음을 열었던 여성은 중후반에 유대인이었고 신분을 위장했다는 것이 들통나 끌려간다. 그리고 아무 후속 이야기가 없다. 그녀는 그저 지나가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주인공과 특별한 교감을 나눈 등장인물이다. 그런데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 수 없다.(물론 99%는 잡혀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허무하다. 반복된 허무감은 소설로서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만일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상당히 실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꽉 짜인 플롯으로 엮인 글을 좋아하는 독자도 재미없다 느낄 책이다. 시쳇말로 ‘호불호가 갈릴’ 글이다.
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당대를 살면서 고통을 삼키는 여인들에 공감해보겠다 마음먹고 책을 넘겼으면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독자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저자
- 로셀라 포스토리노
- 출판
- 문예출판사
- 출판일
-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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