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애석하게도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과 이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의 등장은 짧은 시간에 자극적인 소재로 재미를 창출한다. 반면 매사 시간에 쫓기는 현대 사회에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야 하는 독서는 날로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자기 계발서, 또는 베스트셀러가 있어 독서 활동은 사회 속에서 근근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하나 둘 독립 서점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그 수가 수도권에서만 수백 여개에 달하게 되었다. 독서가 쇠퇴한 시점에 서점 창업이 계속되고, 수가 많아지는 건 이상한 일이다. 독서 인구 부족으로 신음하는 한국에서 서점업은 미래는커녕 현재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책 산업에 많은 이들이 굳이 발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객기로 창업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서점업에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책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는 이러한 의문점에 답을 준다. 저자는 ‘이시바시 다케후미’로 그동안 서점과 서점업에 관한 책을 써왔다.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서점을 탐방한 저자는 어째서 서점을 창업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서점의 매력과 존재 목적을 찾아 나선다. 이를 위해서 그는 곧장 오프라인 서점으로 달려갔다. 빙빙 돌아갈 필요 없이 작금의 상황에서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이들의 말을 바로 듣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기는 하다.
그가 달려간 서점은 저자의 모국 일본을 포함해서 한국, 중국, 타이완에도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따라서 외국 책인데도 어떤 부분은 그냥 한국인이 쓴 한국 서점 기행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쨌든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서점을 돌아보며 그는 서점의 존재 의의와 목적, 그리고 서점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다만 저자는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에 대한 질문의 답변을 명쾌하게 내놓지는 않는다. 그가 경험한 다양한 서점 탐방 기행과 거기서 느낀 점을 책에 실으면서 은근히 독자가 직접 답을 내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의 이런 바람에 맞춰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 생각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서점이 계속 생기는 건 ‘의사소통’ 때문이라고 본다. 이 단어는 책에 등장한다. 저자가 스마트폰이 왜 지금의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고, 그 기기에 다양한 기능이 통합되었는지 설명하는 데 그 이유가 ‘의사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의사소통은 인간의 핵심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에 여러 서비스들이 뭉친 것이다. 서점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스마트폰을 대신해 사람의 의사소통을 보조하고 또는 활성화하는 장으로 동작했다. 이런 역할을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일례로 한국의 여러 서점은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시절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독서 모임, 공부 따위를 위한 소통의 장을 제공했다. 그곳은 자유를 꿈꾸는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사랑방이었다. 비슷하게 타이완에서는 계엄령 기간 동안 노점에서 책을 팔던 상인들이 정부가 금지한 서적들을 몰래 팔면서 민주주의라는 사상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계몽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과 타이완의 이와 같은 사례가 과거의 일이라면 중국, 특히 홍콩은 현재이다. 현 정부에는 비판적인 논조의 책들이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서점에서 취급된다. 내부는 평범한 카페와 서점을 결합한 형식인데 그런 공간이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사상적 구심점 역할을 한다. 시시각각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정부의 마수가 뻗쳐오는 도중에도 – 실제로 책에는 반정부적인 책을 팔다가 결국 서점 문을 닫은 서점 점주가 등장한다. -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기준으로 사람이 연결되는 공간. 이런 홍콩의 서점들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살롱이자 오아시스, 그리고 의사소통의 장이다.
결론 내리면 나는 서점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간의 정신적인 연결 때문이라고 본다. 인터넷 서점이 아무리 편해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신적인 공감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게 독립 서점,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가능하다. 특히 독립 서점이 폭증한 이유는 정신적 연결이 부족한 현재의 상황에 더하여 갈수록 심해지는 개인주의 사회의 반동이라고 본다. 개인주의로 인해 사람 간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사람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고 자의로 고립된다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부족한 감정을 꽉 채우기 위해 서점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서점인은 이걸 알고 서점을 창업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한편 적극적인 사회와의 상호작용, 의사소통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이유일 것이다. 일례로 민주주의 운동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던 한국 서점은 이제 다양한 사회 운동의 지적 바탕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책에 등장하는 서점 ‘이음’이 대표적이다. 이 덕분에 사람은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오프라인 서점이 아니었다면 이들을 한데 모아 사회 운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점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이외에도 다양할 것이다. 그렇기에 책과 독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독서 문화가 쇠퇴하는 한가운데에서도 오프라인 서점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것일 테다. 이 자리를 빌려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께 존경을 보낸다. 그들이 있기에 아직 우리는 사람과 또 사회와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
- 저자
- 이시바시 다케후미
- 출판
- 유유
- 출판일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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