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필요하다
난세
한국 사회는 위기다. 언제 안 그런 적이 있었겠느냐만은, 요새는 한층 심해졌다. 기록적인 저출산,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자살 기타 등등. 대충 나쁜 단어 하나를 입에 담으면 대개 한국 사회 위기의 원인이다. 반면 한국의 좋은 것, 희망찬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금과 비견할 수 있는 시대가 있을까 싶지만 애석하게도 한 사례가 있다. 바로 임진왜란을 전후한 조선이다. 부정부패, 모순, 혼란으로 점철된 시기. 이 때는 놀랍도록 현대 사회와 비슷하다. 답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웅의 존재다. 임진왜란 시기는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성웅 이순신도 있었다. 그는 썩은 조선에 난 기적이었다. 꼭대기부터 부패한 사회의 한 줄기 희망이었다. 단순히 문무를 겸비한 장수라서,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깡끄리 없애버려서 영웅이라는 건 아니다. 사회를 혼란케 한 원인에 맞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온 정성을 다해 기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는 저자의 이순신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 ‘김종대’는 이순신을 자신의 준거로 삼아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이순신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순신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걸 계기로 하여 책을 지었다. 민족의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일생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이순신, 지도자적 품성의 최고봉
책은 시대적 상황, 환경, 이순신의 생애와 그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이순신의 품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책을 보면 그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장애물 앞에서 그는 한결같다. 언제나 간결하고 깨끗하게 옳은 결정을 내린다. 사람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나 놀랍다.
이러한 이순신의 성품은 ‘지도자적 품성’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는 사랑과 정성을 바탕으로 한다. 우선 사랑. 그의 사랑은 가족을 향한 지극한 마음을 토대로 타인, 나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민족 전체로 확장되는 사랑이다. 특히 이순신의 사랑은 모친에 대한 사랑을 보아야 한다. 난중일기는 어머니에 대한 글이 많다. 그는 어머니를 한결같이 천지라 적으며 공경했다. 그중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어머니의 죽음을 적은 부분이다. 이순신이 파직되고 한양에서 모진 고문을 받을 때, 늙은 어머니는 제 아들을 보려 험한 뱃길로 한양에 가다 죽고 만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통곡하며 마음이 찢어지는 감정을 일기에 그대로 적는다. 모함으로 고초를 겪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마음은 어떻게 남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은 제 부하 장수와 군졸로 확장되었다. 그는 부하들과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고, 현대의 보드게임인 승경도놀이도 하며 부하와 함께 했다. 또한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는 개방하여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사랑에 기반한 행동이다. 또 전쟁의 피해자인 백성들에게는 살 곳을 마련해 주고 안전을 책임지며 보살폈다. 가족 사랑이 나라 사랑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의 사랑은 당대 조선의 문인과 장수들과도 비교된다. 심지어 나라의 최고 책임자라는 왕은 백성의 아픔을 외면하고 명에 가까운 국경에서 도주할 궁리나 하지 않았던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왜군을 처음 맞은 많은 장수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왕을 지킨답시고 후방으로 달아나기 바빴다. 우리가 이순신 하면 떠오르는 원흉 ‘원균’이 대표적인 장수다. 싸워 이길 궁리, 백성을 지킬 궁리는 하지 않고 있는 배를 자침 시키고 수만 명의 수군을 어처구니없이 해산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백성 사랑, 나라 사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은 제 책임을 아주 쉽게 버렸다.
정성은 그를 준비된 인간으로 만든 근원이다. 이순신은 무엇이든 정성을 다했다. 우리는 단순히 이순신의 천재적인 능력만 갖고 임진왜란 당시 싸울 때마다 이겼다고 여긴다. 하지만 임진왜란 직전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직후의 행적만 봐도 그의 정성스러움은 능력 못지않게 타에 추종을 불허한다.
임진왜란 직전, 제대로 된 전쟁 준비를 한 건 이순신이 유일했다. 전쟁이 날지 나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은 대책 없이 낙관적으로 상황을 관망했다. 대규모 공세를 예측하는 의견은 소수였다. 당연히 준비를 제대로 할 리 없었다. 반면 이순신은 달랐다. 그는 군수품을 채우고 군사 훈련을 엄격히 진행했으며 우리가 익히 아는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준비가 조선과 일본의 명운을 갈랐다.
비단 임진왜란 때의 행적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가고자 할 방향을 정확히 파악했고,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확고한 방침이 있었다. 처음 무관이 되겠다고 결정했을 때. 북방의 여진을 막기 위해 했던 무수히 많은 준비들. 상술한 임진왜란 직전 그리고 중간에 있었던 준비가 바로 그의 정성 가득한 성품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그는 한 인간으로서도 모범이 되는 완성형 인간이다. 우리 역사에 이렇게 사랑과 정성이 극에 달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영웅이 필요하다
국난이 벌어질 때 언제나 전조들이 있다. 공무원은 위아래로 부패하고 책임을 서로 미루면서 제 이익만을 챙기는 작태도 그중 하나다. 애석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사정은 임진왜란 직전의 그것과 비슷하다. 무책임, 무능, 무관심으로 국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문제를 예방하려는 노력은 소홀한데 터진 문제를 대처하는 건 부실하고 나중 가서는 네 탓이오 하며 책임 떠넘기기를 일삼기 바쁘다. 최근 발생한 잼버리 대회 부실 운영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첫날부터 문제가 발생했고 대처는 미숙했다. 이를 대하는 정치권은 상대 당을 찢어발길 궁리만 하고, 정부 각 부처는 재빠르게 책임을 서로 미루기 시작했다. 결국 고통받는 건 국민이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는데 우리의 영웅은 어디에 있는가. 책을 덮으면서 시끄러운 뉴스를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을 고른 이들은 다 비슷한 이유를 갖고 책을 집어 들지 않았을까 싶다. 현대 한국이라는 난세에 태어날 이를 희구하고 그러한 영웅에 가까이 다가가고픈 마음이 독자의 마음을 끌었으리라. 만일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책을 읽고서 또 한 번 이순신의 일생과 그 시간 동안 묻어나는 품성에 또 한 번 경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이런 영웅이 다시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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