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을유문화사)

작은독서가 2023. 8. 8. 22:39

건축물 톺아보기

책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전자책 표지 사진

건축물은 그저 건축물이 아니다

잘 만든 건물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서울의 경복궁이나 숭례문, 종묘 기타 역사적 건축물들은 그 앞에 서면 시대를 뛰어넘는 감정의 울림을 이끈다. 비단 오래되어서 그런 건 아니다. 한국 마천루의 상징인 63빌딩이나 롯데월드타워의 쭉 뻗은 몸을 보면 멀리 있어도 전율이 인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 주택, 기타 공공건물들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어떤 건축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관심을 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뭘까? 필자 생각에는 건축물을 만든 건축가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건축가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 감정, 신념 따위를 포함한다. 마치 작가의 글귀에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이 묻어나는 것처럼. 또 화가의 붓질 한 번에 그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처럼. 즉 건축물은 건축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책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은 저자 유현준의 건축물 해설서이다. 저자는 책, 예능 프로, 유튜브 등을 종횡무진하며 사람과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 건축가이다. 많은 이들에게 건축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저자의 모습은 순수한 기술자라기보다는 책을 해설하는 북튜버나 서평가와 비슷하다. 흔히 건축은 이과, 공대 이미지가 있고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건축의 이미지를 인문학적 소양을 녹아내 성공적으로 결합한다. 마치 인문학자처럼.

 

이번에 소개할 책은 그의 이런 인문학자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건축물에 대한 단순한 세부사항을 나열하는 것은 물론 인문학적 시각에 기반한 해석, 더불어 건축물을 매개로 건축에 들어간 건축가의 사고방식, 품성 그리고 건축을 대하는 자세를 설명한다. 고로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건축물을 매개로 한 건축가와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30개의 건축, 30개의 생각

책은 저자가 뽑은 30개의 건축물을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의 기준에 세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현대 건축을 선정했다. 지역별로 분류한 건축물들은 하나의 챕터를 갖는다. 그 안에는 건축물의 내력, 건축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사진 자료 등 건축물 자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다. 더불어 그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건축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정신세계, 감상, 태도 따위가 설명에 포함된다. 즉 건축물과 건축가를 두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두 축은 서로 섞인다. 앞서 말했듯 건축물은 건축가의 정신을 담는 그릇과 같다. 건축가의 이상과 표현이 바로 건축물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비전문가인 독자가 제대로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안도 다다오 등 건축 관련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건축계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도 책 속에 있다. 문제는 영 건축과 친하지 않은 필자 입장에서는 누가 누군지 솔직히 잘 몰랐다. 지금도 이들에 대하여 아는 척할 정도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건축가를 모르는데 이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건축을 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 부족한 지식과 감상으로 벌어지는 문제 때문에 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목에 저자의 이름이 괜히 들어간 것이 아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지향한 ‘건축은 기계’라는 이야기도, 건축물 ‘낙수장’을 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자연과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얘기도, 또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면서 표현한 유선형 벽체의 의도에 대한 생각도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을 렌즈 삼아 더 깊고 자세히 알 수 있다. 만일 저자가 아니라면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처럼 재미있고 또 이해하기 쉬웠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건축과 인문, 연결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건축물과 함께 한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 익숙하다 보니 건축물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배경이 되어버린 건물들은 사람의 인상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모든 건축은 어쨌든 건축가의 생각이 들어있다. 그게 사소하든 크든 중요하든 아니든. 이렇게 생각하면 매일 보는 건물이 다르게 보인다. 심지어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도 어떤 의도가 있는지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책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의 가치는 일반 독자에게 건축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30개의 건축물을 선정했지만 모두에게 인상적인 건축물은 다 다를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필자도 흥미로운 건물들을 몇 개 찾아보고 그 내력을 알아보았다. 모든 독자들이 이 책 내용을 넘어 건축물과 건축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은 그 정도로 매력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