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같이 할래요?
독서라는 행위
우리나라에서 독서라는 취미는 왠지 모르게 입에 담기 민망할 때가 많다. 언젠가 자기소개 취미 항목에 왕왕 독서를 썼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독서라는 말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는 이들이 많다. 다른 취미 활동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서를 취미로 삼은 사람은 그래서 일단 나를 변호할 준비를 잔뜩 해야 한다. 최소한 언제 뭘 읽었는지 기록해 놓은 걸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감상문, 서평 등을 써서 모아 두는 것이 좋다. 이 정도는 준비하고 증명해야 겨우 독서가 취미라는 사실을 상대방이 진심으로 믿는다.
유독 독서 취미를 믿지 못하는 건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이 크다. 2022년, 작년 한 해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성인은 절반도 안 된다. 책 읽은 이들의 경우에도 평균 4권 정도를 읽었다 한다. 이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독서를 말하는 순간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좀 많이 억울하기는 하지만.
왜 사람들은 독서를 멀리할까? 독서를 취미 삼아 시간을 때우는 내게는 늘 의문이었다. 반대로 다른 이들은 나를 의아하게 여겼다. 내게 종종 왜 책을 읽는지를 묻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대의 의문이 내 궁금증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내가 읽는 이유와 상대가 읽지 않는 이유. 이 질문의 핵심은 한 사람이 책에 어떤 가치를 두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미와 효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책과 함께 하는 경험은 사실 그리 유쾌하지 않다.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책은 교과서, 문제집이고 글로 확장하면 시험 문제, 학원 자료, 기타 공부나 입시 관련 글이다. 단지 재미를 위해 책을 읽는 기간은 아주 어린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야 한다. 슬프게도 그 짧은 기간은 요새 더 짧아지고 있다. 세네 살 정도 된 아이도 수많은 학원에 다니는 현실. 글도 다 때지 못한 이 아이들은 재밌는 동화책보다 어렵고 따분한 수학, 영어 문제를 보며 큰다. 이런 성장 과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과연 책을 좋아할 가능성이 몇 % 나 될 것인가. 아마 확률은 0으로 수렴하지 않을까. 책은 재미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성적 따위를 올리는 도구로서의 효용성으로 평가받기 일쑤다.
나는 이 시대를 ‘독서 빈곤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 한가운데에서 책을 찾아 읽는 나는 때때로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느낌을 받는다. 온갖 오해의 눈초리 때문이다. 책을 들고 읽고 또 사는 전 과정이 타인에게는 기이한 행위로 비치는 듯하다. 심지어 가족한테도!
그래서 이 책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는 이 세상에 몇 없는 동지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속초에서 무려 3대째 이어오는 서점의 3대 주인인 저자. 그는 책을 즐기고, 책과 같이 생활하며, 또 책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읽은 책과 자신의 삶을 엮어 보여준다. 인생의 장면 장면마다 책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한 사람의 독서가인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독서는 삶 속에 녹아든다
책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는 저자 김영건 씨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그게 저자가 읽은 책과 연결된다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책은 큰 챕터 아래 작은 챕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경험 하나 책 하나가 짝지어 내용을 구성한다. 그 경험은 서점에서 만난 어떤 인연과의 일일 수도 있고, 저자의 과거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혹은 가족 이야기나 가게 주변의 이웃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하나하나 독특한 경험임에도 그에 딱 맞는 책 경험이 있다. 역시 유명한 서점 주인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걸까.
맥주 ‘오백’을 마시면서 20대 중반, 진짜 어른들 사이에서 어른의 기분을 맛보았던 청년 시절을 그리면서 ‘초년의 맛’이라는 책을 연결 짓기도 하고, 아들이 원하는 책을 꼭 보내주고 싶다고 하얗게 눈 덮인 거리를 밟고 서점을 방문한 할머니의 이야기와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라는 책을 잇고도 하는 등. 그저 경험만으로도 재미있는 내용이지만 책 하나하나를 더해 조금 더 풍성한 이야기로 탈바꿈했다고 하면 내 과장일까.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적힌 책 이름을 스마트폰 메모지에 기록했다. 마치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듯. 그 책을 읽고 싶어 못 견디겠어 몇 권 정도는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이 마음은 비단 나만이 품은 감상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작은 경험들이 슬쩍 책을 내 곁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부드러운 권유가 어디 있을까. 따라서 이 책을 나는 독서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스리슬쩍 책 목록을 찔러 주는 저자의 마음을 다른 독자들도 느꼈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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