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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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적의 벚꽃’은 읽을수록 마음 저릴 만큼 슬프다. 주인공은 프롤로그에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쓸 수 있는 건 슬픔뿐이었다. 책 속에 뒤죽박죽 시점이 섞여서 등장하는 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슬프다. 주인공이 미래를 향해 버둥거리는 그 모습이 아니꼬운지, 세상은 그에게 좌절을 부르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천재지변이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우연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방해물들은 결국 주인공의 희망을 꺾어버린다.
그는 슬픔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슬픔뿐이었다.
필자는 이 책을 세 가지 키워드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가난, 사랑, 그리고 욕망이다. 주인공의 슬픔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고, 심화되었다. 따라서 이를 따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가난, 마음에 남은 멍에
어떤 가난이 행복할까. 가난은 모든 불행의 단초이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철이 들 무렵 제 집의 가난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첫 등교일, 아버지가 일한다는 학교에 둘이 같이 등교한 주인공은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가 교장이라 지레짐작한 그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참 어린 학생에도 쩔쩔매며 잡일을 도맡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난에 찌들어 굽신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주인공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슬프고 창피하고 또 아프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이후 아버지와 같이 등교하는 걸 거부했다. 온갖 구실을 만들어 아버지와 자신을 구분하려 했다. 하지만 가난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집 안에도 가난은 가족을 아프게 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장애가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그렇다. 어머니는 제대로 거동조차 하지 못했다. 먹는 것도 도움을 받아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어머니를 치료할 비용이 없어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은 푼돈이었다. 생계를 잇기 어려운데 그 이상의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가난이 어머니의 병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돈이 없을 때의 무력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아버지 결국 제 집을 불법 노름판으로 내어주고 돈을 받는 일종의 임대업을 시작한다. 당연히 이는 불법이었다. 그렇지만 정직하게 버는 돈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 돈으로 아내의 치료도 하고 자식에게 간식도 사 주곤 했다. 얄궂은 일이었다. 가난에 허덕이는 상황을 그나마 낫게 만든 건 불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가난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욕망은 파멸의 씨앗이었다. 법을 어긴 대가로 아버지는 경찰에 꼬리가 잡히게 되었다. 돈을 벌 길이 막힌 상황에서 아버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할 문제부터 막막했다. 그런데 아이와 장애가 있는 사람 한 명을 보살피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가난은 아버지에게 자살을 종용했다. 그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는 가난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남은 주인공은 제 아버지처럼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편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찾는다. 주인공은 그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은 주인공에게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주인공을 옭아매는 가난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주인공의 마음속에 가난에 대한 상처가 그만큼 깊고 진하게 남아 있다. 오히려 가난은 더 강하게 주인공을 끌어당겼다. 주인공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끝에 자신이 붙잡은 행복을 깨버릴 것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몰랐다.
사랑, 비뚤어진 것
추쯔. 주인공이 사랑했던 사람. 그녀는 현재 실종 상태다. 그녀는 불륜을 저질렀고, 그 때문에 도피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추쯔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고 기다리는 중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추쯔는 사랑의 대상 그 이상이다. 그녀는 주인공의 고된 삶에서 한 순간의 빛과 같았다. 희망이기도 했다. 가난 속에서 그의 내면은 이미 상처로 가득했다. 그 순간 추쯔를 만났다.
추쯔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종종 엉뚱한 발상을 하고 그걸 말로 옮겼다. 주인공은 그런 추스를 사랑 했다. 필자는 주인공이 사랑을 한 이유를 추쯔가 밝고 희망찬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인공이 그녀와 만나기 이전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던 것이다. 요컨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라는 감정이 주인공의 사랑을 가장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을 듯싶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그는 사랑에 대해 몰랐다. 그의 사랑은 왜곡되었다. 사랑하니까 추쯔와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옛 과거의 가난을 숨긴다. 어쩌다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는 적당히 각색하거나 끊어낸다. 또한 사랑하니까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서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는? 일에 치여 제대로 추쯔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에 치달았다. 이건 사랑보다는 소중한 보석을 아끼는 마음과 닮았다. 함 속에 꽁꽁 숨겨놓았다가 생각날 때 꺼내보고 닦는 그런 보석 말이다.
실제로 추쯔는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처럼 밝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우선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가난했다. 가족들은 모두 일을 해서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나간다. 또 주인공이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그녀도 어릴 적 화재로 인해 가족 한 명이 불타 죽은 사건이 있었다. 이때 추쯔 자신에게도 큰 화상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런 추쯔의 내면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요컨대 주인공의 사랑은 결코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행위들이 제삼자 입장에서는 그저 자기만족이고 위선일 뿐이다. 서로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관계. 돈을 벌기 위해 몸이 멀어질 대로 멀어진 관계. 이런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앞에서 말한 가난, 그리고 가난이 남긴 상처를 애써 없애려는 욕망 때문이다.
욕망. 모든 걸 파멸로 이끄는 것
이 책에서 주인공은 욕망을 갖고 있다. 바로 가난을 벗어나고 부를 얻는 것이다. 책은 부를 가진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등장시킨다. 바로 ‘회장’이다.
회장은 주인공이 다니는 건설업체의 대표다. 주인공은 회장의 신임을 받아 측근으로 활동한다. 회장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부를 가진 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치다. 회장은 지근거리에 있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부를 체험하게 해 준다. 회장의 이름을 빌린 것이지만, 이전까지 데면데면했던 관공서 직원들이 싹싹하게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경험을 한다. 또 주인공이 절대로 탈 수 없는 고급 자동차를 탑승하게 해 주기도 한다. 특히 여러 차례 회장은 매춘을 하는 장소에서 주인공을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회장은 주인공에게 부가 무엇이고, 부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다.
두 번째 의미는 부의 어두운 일면이다. 회장은 돈이 많지만 자신의 발 통증은 고치지 못한다. 오히려 돈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고통이 더욱 악화하기도 한다. 한편 회장은 가족들과의 사이가 상당히 나쁘다. 특히 회장은 그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들이 얼굴을 마주하는 건 돈 때문이다. 이익 때문에 인륜이 뒷전이 된 이 광경을 주인공은 똑똑히 본다.
중요한 건 두 번째 의미다. 회장은 주인공이 가진 꿈은 부를 통해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던 추쯔를 잃게 된다.
슬픔밖에 없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언젠가 경품으로 사진기를 받은 추쯔. 그녀는 사진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무료로 사진 수업을 지역 명사인 뤄이밍을 알게 된다. 뤄이밍은 지역에 이름난 명사로 사람들의 존경을 듬뿍 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선행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뤄이밍은 제 명성에 먹칠이 될 것을 알면서도 유부녀인 추쯔에게 손을 댔다. 책의 서술자인 주인공의 서술로는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하지만 추측해 보자면 시작은 가난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언젠가 추쯔에게 회장이 자신이게 투자금이 있으면 사업의 지분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주인공은 그저 회장이 말한 것을 추쯔에게 옮겼을 뿐, 실제로 지분을 얻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은 추쯔는 달랐다. 돈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이때까지 돈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추쯔와는 달랐다.
필자가 생각으로는 추쯔의 행위는 그녀의 감정 상태 때문이라고 본다. 앞서 둘 사이의 사랑은 비뚤어져 있었다. 그 상황에서 주인공에 대한 추쯔의 사랑도 점점 옅어져 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변하는 심리 상태에 대한 부정, 불안, 속죄, 죄책감 따위의 감정들을 그 행위를 통해 해소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뤄이밍은 이런 추쯔의 상황을 잘 알았다. 은행 직원인 그는 자신의 특권으로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그 대가는 추쯔와의 불륜이었다. 어떤 곡절이 숨어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추쯔는 그 제안을 수락한 듯하다. 처음에는 어떤 생각으로 추쯔가 불륜을 저질렀는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행위가 추쯔의 흔들리던 감정 변화에 쐐기를 박는 행위였음은 틀림없다.
결국 추쯔의 일탈을 주인공이 알게 되었을 때, 추쯔가 잠적한다. 이는 추쯔의 마음이 변했음을 알려주는 장치이자,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주인공의 행복이 끝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제 주인공은 꿈도 행복도 미래도 없었다. 주인공은 이제까지 열정적으로 임했던 건설업계를 떠나고 카페를 차린다. 추쯔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렇지만 추쯔는 돌아오지 않았다.
책에는 슬픔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슬픔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 다짐은 무의미하다. 그는 슬픔을 자아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은 슬픔밖에 없었으므로.
책 ‘적의 벚꽃’은 소재를 놓고 보면 참신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난에 찌든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던 상대방이 불륜한 뒤 주인공이 절망에 빠지는 건 흔한 소재다. 하지만 소재가 흔하다고 하여 글의 가치마저 저평가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책의 최대 강점은 바로 작가의 필력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책의 내용에 호소력을 더한다. 자칫 식상할 불륜 이야기를 이렇게 슬프게 표현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 슬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가난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리고 부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비극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작가는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지을 수 있었을까.
- 저자
- 왕딩궈
- 출판
- 박하
- 출판일
-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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