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산지니)

작은독서가 2022. 4. 23. 15:04

<나는 나>

책 '나는 나' 전자책 표지 사진

처음 가네코 후미코를 알게 된 건 영화 ‘박열’을 통해서이다. 이 영화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든든한 조력자, 파트너, 그리고 연인으로 등장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독특하다고 여길 지 모르겠다. 그들이 살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일본 제국의 여성과 식민지 조선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도 이러한 관계를 형성했다. 나는 이 영화를 알게 된 후 흥미를 갖고 이를 시청했다. 대체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일생 전체 중 아주 일부분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감질났다. 특히 가네코 후미코. 이 사람이 어째서 조선인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따라서 가네코 후미코가 직접 쓴 책 ‘나는 나’는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리라 생각했다. 이 책은 그녀가 감옥에 수감된 후,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수기다. 그녀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감옥에서 사망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녀의 생애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가네코 후미코라는 한 인물의 유서다. 한편 그녀의 자유로운 가치관의 이유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다. 그녀의 생각과 행동의 근저에 어떤 아픔과 괴로움이 있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책을 처음 펼치려고 한다면 바라건대 박열이라는 조선인 청년을 찾으려고 하지 마시라. 박열의 이야기는 이 책의 종결부에 잠깐 나올 뿐이다.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박열의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가네코 후미코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여정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자아를 찾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불운한 과거와 현재를 딛고 자유를 찾은 가네코 후미코의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을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녀의 불운한 생 속에서 피어나는 조그마한 희망을 보고 독자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불운한 인생

이 책은 가네코 후미코의 유작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이 수기에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펼쳐나간다. 그렇지만 그녀의 인생은 그리 담담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끔찍하고 잔인한 주변 환경과 이를 힘겹게 버텨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제국 시기에 태어난 일본인이다. 그녀의 삶은 우리의 상상과 달리 암울했다. 그녀의 삶은 빈곤, 학대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지 못했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오히려 부모의 존재는 고통이었다. 아버지는 불성실하여 도박에 빠지고 재산을 탕진했다. 그는 심지어 자기 아내의 친동생과 불륜을 저질렀다. 아버지와 불륜이 난 이모는 둘이서 새 살림을 차리고 도망쳤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온갖 남자들과 살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돈이 떨어진 어머니는 그녀를 유곽에 팔아치우려고 했다. 그것은 실패했지만, 결국 다른 집으로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버렸다.

친할머니와 고모는 식민지 조선에서 그녀를 불렀다. 달콤한 말로 꾀어내어 잘 길러주겠다고 하며 조선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건 끔찍한 학대였다. 그들은 아이를 부려먹을 수 있을 때까지 부려먹었다. 혼기가 차자 그녀의 혼인 비용을 감당하기 싫었던 친가는 그녀를 버렸다. 말로는 고향 일본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돈 때문에 버린 것뿐이었다.

일본에 있는 외가로 돌아간 후로도 그녀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삼촌은 파계승에 색에 미친 자였다. 그런 자에게 이제까지 찾지도 않던 친부가 찾아와 제 딸, 가네코 후미코를 팔아치우듯 혼인시키기로 약조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부녀간 사이는 끝장이 났다.

그녀는 이런 주변 환경에서 살아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도쿄로 상경했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한 방법, 즉 고학은 성인 남성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일을 해야 밥을 벌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공부를 할 여력이 없었다. 겨우겨우 돈을 벌어 학교에 다녔지만 그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긴 수렁 속에 빠져있던 순간에 그녀는 자신이 영원히 함께할 동지를 찾았다. 언젠가 지인이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시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 시가 그녀의 마을을 들었다 놨다. 시의 저자는 바로 조선인 박열이었다. 그 남성과 그가 가진 꿈에 반한 그녀는 그와 결혼하기를 마음먹는다. 그녀는 학문을 통해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학문이 아니라 그의 꿈에 동참하는 것이 제 길이자 목표임을 깨달았다. 그를 만나서 서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그녀의 수기는 이것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나

이 책은 가네코 후미코가 어째서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녀는 주변 상황에 쉽게 휘둘렸다. 그녀가 강하고 주체적인 인간일지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자신이 가진 그 본성을 드러낼 수 없었으리라. 간간이 그녀가 주체적인 선택을 하곤 했지만 이조차도 넓게 보면 환경이 제공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것에 불과했다.

이 상황이 변한 건 동지, 박열의 시 덕분이었다. 그 시 덕분에 가네코 후미코는 다시 태어났다. 지긋지긋한 환경의 족쇄를 공부를 통해 끊으려고만 했던 그녀의 삶이 180도 달라졌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을 찾았다. 그것은 박열이 갖고 있는 가치였다. 그녀는 박열의 목표를 함께 이루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활동을 시작하고 일본 제국 정부의 눈밖에 나서 감옥에 갇히고 최후에는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무리한다.

그녀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찾았고, 그걸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바쳤다. 실제로 이 그녀는 목숨을 끊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없으며 여기서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그녀의 목표는 명확했고, 가치는 밝았으며, 방향은 곧았다. 그녀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자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과연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소중하게 여긴 그녀의 가치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 제목만큼 자신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말은 없다. 우리는 이 제목을 통해 그녀가 찾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마음을 뛰게 한 가치는 바로 '자신답게 사는 삶'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김이 셀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자신다운 삶은 사실상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누군가 그녀의 주체성, 저항정신 따위를 그녀 자체로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

그녀는 평생 동안 불운한 환경과 씨름했다. 그건 그녀의 저항 정신, 반골 기질, 혹은 악바리 정신을 기를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네코 후미코 '자신'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환경에 저항하며 기른 그 정신들은 사실 그녀가 바란 것이라기보다는 환경에 의해 조정된 자신이었을 뿐이었다. 일례로 공부를 위해 무작정 도쿄에 상경했던 그녀를 들 수 있겠다. 이를 보면 당대와 맞지 않은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가네코 후미코를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술하였듯 이 또한 그저 환경에 휘둘린 결과일 뿐이다. 공부만이 그녀의 삶을 구원할 것이라는, 고된 환경 속에서 내린 결론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친지들에게 배신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녀에게 혼자서 살기 위한 방법은 그저 공부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변했다. 박열의 시를 보고서 학교에 가지 않는 장면은 그녀의 내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바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란 가치관을 찾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저 살기 위해 공부한 그녀의 삶은 그때 끝났다. 자신답게 사는 삶. 그것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 목숨을 끊는 순간까지 가치관을 위해 살고 죽었다.


이 책은 가네코 후미코의 인생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이 가치 있는 것은 그녀가 어려운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어떤 인간이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고, 그걸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이 알려준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들은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기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각국의 경제위기 등 우려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불안한 상황이다. 이때 우리들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특히 청년들, 젊은이들은 가치관 없이 방황하거나 극단주의에 경도되어 자아를 잃고 사상의 도구가 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를 잃지 않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찾고 행동하는 것.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와 같은 삶과 의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는 나(리커버)(개정판)
영화 〈박열〉이 주목받기 시작하자 대중들은 조선의 독립운동가 박열을 궁금해했고, 그와 동등한 관계에서 동거서약서를 작성한 가네코 후미코를 궁금해했다. 책은 영화가 그리지 못한 가네코 후미코의 유년·청년기를 담고 있다. 반역죄로 감옥에 갇혀 23년의 짧은 삶을 끝낼 때까지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해 용기 내고 실천했던 ‘가네코 후미코’. 이 수기는 국가와 가부장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염원하고 실천했던 그가 남긴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저자
가네코 후미코
출판
산지니
출판일
2022.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