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는 동화를 즐겨 ‘들었다’. 읽었다는 말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언젠가 부모님이 카세트테이프 탑을 가져온 적이 있다. 이 탑은 노란색이고 뱅뱅 돌아가는데, 안에는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씩 꼽아 넣을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었다. 그 홈에는 테이프가 빽빽하게 차 있었다. 나는 처음에 테이프보다 그 탑 모양의 케이스를 더 좋아해서 뱅글뱅글 돌리며 놀았다. 그렇지만 어느 날부터 그건 지겨워졌다. 그리고 오디오에 아무 테이프나 꼽아 놓고 듣기 시작했다. 그러면 성우가 동화를 하나 씩 들려줬다. 수없이 많이 테이프를 돌려 듣다 보니 오디오가 망가져서 두 번째 오디오를 사고, 또 망가져 세 번째 오디오를 산 기억이 난다. 이제는 카세트테이프도 그와 함께 있던 케이스도 없지만 세 번째 오디오는 아직 집에 있다. 내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는 하지만. 카세트테이프를 볼 때면 옛날 동화를 들을 때가 떠오른다.
이번에 소개할 책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의 저자 ‘어맨다 레덕’은 위에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동화를 사랑하고, 디즈니 만화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였다.(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몇 번이고 돌려봤다는 내용이 있는데 필자도 그렇다. 디즈니 만화 영화 비디오테이프 재생기도 몇 번 망가뜨릴 정도로, 그리고 테이프도 몇 번 수선할 정도로 엄청나게 봤다. 그것도 모자라 빌려서 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뇌성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짧은, 그래서 다리를 절며 걷는 사람이다. 책은 그녀의 일생과 동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 두 가지를 계속 교차해서 보여준다. 장애와 동화, 그리고 동화가 사회에 그리고 장애인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함이다.
언뜻 보면 장애와 동화? 그게 무슨 상관인지 싶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인어공주, 알라딘, 미녀와 야수, 기타 등등의 것들이 장애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 저자의 책은 동화의 내용을 넘어 그 동화가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일깨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현대의 동화가 어떻게 ‘장애’와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동화는 동화일 뿐인데 유난 떠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동화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저자는 장애를 받아들이는 인식은 크게 두 가지의 모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바로 의학 모형과 사회 모형이다. 둘의 차이는 장애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느냐에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의학 모형은 장애를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그리고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치료, 교정하여 최대한 ‘정상’이라고 여기는 데까지 수정해야 옳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르고 무능한 자로 낙인찍힌다. 반면 장애의 사회 모형은 장애는 사회의 인식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 때문에 고통받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에 의해 고통받는다. 그게 장애다. 따라서 장애는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으로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사회생활과 만족감을 느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저자 ‘어맨다 레덕’의 삶은 어릴 적부터 불행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뇌에 문제가 있었고, 이를 위해 수술을 했지만 뇌성마비는 막을 수 없었다. 다리는 한쪽이 짧게 자랐다. 그녀는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더 가혹한 것은 사회의 냉대와 혐오, 차별이었다. 학창 시절은 당연하다는 듯 따돌림을 당했다. 그 기억은 그녀의 인생 깊숙한 곳에서 계속 누적되다가 터져버렸다. 어린 때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 유학에 다녀온 뒤였다. 그런데 유학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 그녀를 감쌌다. 그건 그녀의 직장이었던 병원에서 간호사가 된 옛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그 간호사는 저자의 어릴 적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그 사람은 과거의 일은 깡끄리 잊어버리고(혹은 잊은 척하고) 평범하게 어맨다를 대했다. 그건 꾹꾹 눌러 참던 고통이 일시에 폭발하는 트리거가 되었다. 그녀는 우울증에 걸리고 심각해지고 결국 치료를 받게 되었다.(지금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사회는 그녀에게 자신이 사회에, 비장애인에 ‘맞춰야’ 하는 존재라고 유도했다. 사회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장애인 개인이 맞춰야 한다는 건, 마치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라는 소리만큼이나 어리석었다. 저자가 사는 곳, 아니 거의 모든 곳에서 의학 모형에 근거한 이 사상이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 사상을 퍼뜨린 것 중 하나가 바로 동화였다. 동화는 장애가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의 시련 중 하나나 적대 인물의 악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쓰였다. 그런 동화의 편협함은 이를 읽는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장애가 시련이라는 것, 장애물이라는 것, 다르다는 것과 이를 넘어서고 으레 동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시켰다.
당연히 동화 속 결말은 동화에서 가능하다. 행복한 결말은커녕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장애가 말끔하게 제거되는 상황, ‘비정상인’이 되는 상황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인어 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이 다리를 얻고 사랑을 쟁취한 것, ‘미녀와 야수’의 야수가 멋진 왕자로 변한 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보는 장애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은 평생 장애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비정상인처럼 보이라고 노력하라는 사회의 압력을 잘 안다. 그렇다면 이들은 끊임없이 비장애인의 그것을 갈망하면서 끝없는 고통에 빠져야 하는 걸까. 행복한 결말 따위는 바랄 수 없는 채로?
저자의 입장은 NO다. 앞에서 말한 사회 모형이 저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장애는 사실 장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사회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장애라는 것도 결국 사회가 포용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는 건 아닐 거다. 그저 ‘다름’의 한 종류일 뿐이다. 마치 비장애인이라도 키가 다르고 몸무게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비장애인의 키와 몸무게가 다르다고 해서 사회는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이 누리는 것도 동등하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도 이들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저자는 동화를 직접 쓰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휠체어를 탄 소녀가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모습이 다른 소년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동화의 내용이 장애인을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용할 수 있다면, 이를 읽는 아이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바뀐 동화처럼 장애인을 포용할 수 있게 되리라.
추천 독자
동화를 읽는 아이들을 둔 부모를 먼저 추천한다. 우리는 동화를 막연히 아이들이 읽을만한 좋은 글, 교훈적인 글로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읽어주거나 사주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동화는 아직 장애인 친화적인 글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의학 모형, 즉 장애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문법을 담고 있다. 당연히 모든 동화가 그런 차별의 언어를 제거하고 장애인을 생각하는 새로운 동화가 많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그렇게 바뀌는 건 비현실적이다. 그러니 부모가 먼저 이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걸 위한 바탕으로 이 책을 권한다.
동화 작가에게도 권한다. 굳이 동화가 장애인을 위한 내용을 무조건 담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동화 작가가 자신이 쓰는 글이 그저 아이들이 읽는 사소한 글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싶다. 이 책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는 장애인들의 동화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들의 생각을 들으면 동화가 단순히 아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꿀만한 힘 있는 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막중한 책임이 작가에게 있다.
- 저자
- 어맨다 레덕
- 출판
- 을유문화사
- 출판일
-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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