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디에나 독재 정부는 존재한다. 책 ‘1984’는 이런 독재가 극단으로 치달은 모습 생생히 표현한 고전이다. 20세기 중반의 작품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내용, 설정을 보면 이 책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도 유의미한 깨달음을 선사하는 고전으로 등극한 것을 납득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탄생은 저자 ‘조지 오웰’의 사상과 경험의 영향이 컸다. 영국 식민지에서 경찰로 일한 것,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것이 그 경험 중 하나다. 특히 전체주의의 끝을 달리던 스탈린 치하 소련 이 조지 오웰의 시대에는 실재했다. 그 결과 전체주의 부정적 인식은 저자의 작품 ‘동물농장’과 여러 저작물, 인터뷰에서 전체주의, 특히 스탈린주의 치하 공산 진영에 대한 비판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조롱 그리고 냉소를 드러내기 위해 조지 오웰은 디스토피아를 상상했다. 책 ‘1984’는 따라서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특기할 점은 그는 당시 소련 사회의 모순과 잔혹함을 명확히 꿰뚫어 보았다는 데 있다. 지금이야 소련의 부정부패, 모순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은 지식인, 사회운동가 등 많은 이가 자본주의의 병폐에 질려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으레 공산주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하층 계급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진심으로.
한편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 중 다수는 막연히 공산주의는 나쁘고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선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전혀 논리적 근거가 없었다. 혹은 이러한 논리적 빈곤 상태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독재자, 독재 정부가 출현하기도 했다. 즉 상대를 정확히 꿰뚫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수는 그저 무지하거나 무시했고, 일부 야심 있는 인물들은 이를 이용했다. 특히 야심 있는 정치인, 군인, 기타 독재자들은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스탈린주의 아래서 만들어진 강도 높은 권위적, 통제적 전체주의를 모방하는 촌극을 벌였다. 한국의 박정희가 대표적이며 기타 제1세계에 속한 독재자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을 비롯해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몇몇은 스탈린 체재, 더 나아가 공산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한계를 정확히 인식했다. 특히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공산주의의 모순과 허상을 절절히 느꼈다. 이후 그의 집필 활동 및 여러 행태는 공산주의 혁명 이후의 모순적 세계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책 ‘동물농장’과 ‘1984’는 물론이고 그의 여러 수필 등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책 소개로 돌아와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 줄로 말하면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라는 남성이 체제에 불만을 품고 저항하려 하지만, 결국 오세아니아, 즉 영국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당’에 굴복하는 이야기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프롤로 불리는 하층 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도 아니고 최상위 계층인 내부 당원도 아닌 외부 당원으로서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그의 당에 대한 불만은 천천히 축적되지만 그걸 폭발시킬 계기는 없었다. 그의 반항심이 폭발적으로 드러난 건 줄리아라는 여성과의 밀회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인간 간의 사랑이라는 숭고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영사, 즉 영국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당을 전면적으로 거역하는 수단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당과 맞선다고 주장하는 ‘형제단’에 가입한다. 하지만 이건 사상경찰과 당의 함정이었다. 둘은 사상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는다. 고문은 윈스턴 스미스가 가진 신념과 가치, 지식도 파괴할 만큼 무자비했다. 결국 그는 최후까지 전체주의 체제에 침범당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자신의 감정, 신념, 양심 등 내심의 의사까지 그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철저히 당에 세뇌된다.
책 반체제 인물이 세뇌당해 결국 철저히 당의 이념에 순종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내용을 진부하다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바로 전체주의 체제의 작동 목적과 방식을 설명하는 장면, 그리고 인간의 내면 사고와 감정, 양심을 완벽히 장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우선 당은 결코 자신의 목적이 권력, 완전무결한 권력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공동체 가치를 완전히 파괴하며 잘잘이 쪼개진 개인을 만든다. 이들의 마음은 의심과 불안, 그리고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이는 당의 이념, 정신 따위를 집어넣어 체제 영합적인 인간을 만들기 쉽게 한다. 그 결과 가장 끈끈해야 할 가족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마치 중국의 과거 문화 대혁명 당시 홍위병처럼 만들어버린다. 한편 가족 외에 중요한 인간 관계인 남녀의 이성적 끌림, 사랑 등 애틋한 감정 또한 지워버린다. 더불어 성적인 생활은 역겹고 혐오스러운, 그저 인간 출산을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로 격하한다.
압권은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인간의 내면, 즉 정신을 세뇌하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사랑하던 줄리아에 대한 모든 정보를 불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사랑의 감정을 없앤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사랑은 더 깊어졌다. 이 감정을 당이 달가워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당은 이런 감정을 지워버릴 강력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윈스턴의 경우는 쥐였다. 시체는 물론이거니와 살아있는 아이까지 뜯어먹는 식인 쥐. 당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에 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당은 이를 이용해 스스로 제 양심을 배신하게 만든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것으로 그의 사랑의 감정은 완전히 박살 나게 된다. 아니, 사랑뿐 아니라 그의 감정 전체가 박살 났다고 해야 옳겠다.
당이 고통과 본능적인 두려움을 외에 전체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은 진실에 대한 개인의 믿음을 통제하는 것이다. 진실은 결국 인간 외부에 있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데 있다는 것을 저자는 책을 통해 주장한다. 예컨대 2+2=5라는 게 완벽히 수학적으로 틀렸다고 해도, 그것은 저 수식이 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믿으면 결국 진실로 포장된다. 누구도 거짓이라고 하지 않으니까. 또 사람이 날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자명한 사실로 ‘믿는다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이용하는 집단을 아주 잘 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 일가의 신격화가 그것이다. 누가 믿을지 의아할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로 – 예컨대 솔방울로 폭탄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이야기 – 북한 정부는 북한 주민에게 이를 진실로 믿게 세뇌시킨다. 그것이 효과적이든 아니든 믿음을 왜곡하여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술책이 현실에도 버젓이 쓰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황당함만 덜할 뿐, 한국도 똑같은 일들이 있었다. 가령 ‘땡전뉴스’라 불렸던, 뉴스 시작과 동시에 시작된 전두환 찬양 보도가 그것이다. 거기에 나온 모든 미담이 설마 진실이겠는가. 다만 거짓을 믿게 해 진실로 둔갑시키려는 술책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왜곡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책 속에서는 역사 수정 작업도 진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 공무원으로서 한 업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쨌든 이 수정 작업은 구시대, 진정한 사실을 알 수 있게 만드는 모든 콘텐츠를 삭제,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당은 자신들이 왜곡한 진실을 왜곡되었다고 증명할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게 한다. 설령 인간의 기억 속에 그들의 진실 왜곡 – 책에서는 끊임없이 오세아니아(주인공이 소속된 국가)의 전쟁 대상이 바뀐다. 바뀌면 그 순간 과거의 모든 전쟁은 현재 적으로 인식하는 대상으로 모조리 수정된다. - 사실을 안다고 해도 상관없다. 앞서 말했든 인간이 믿는 사실이 진실이라면, 당이 원하지 않는 ‘믿음’을 지닌 자는 잡아다 세뇌시키면 그만이다. 고통이든 절망이든, 혹은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자극하든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믿음을 흔들면? 세뇌시키면? 그러면 거짓은 영원히 진실이 된다. 그들이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해 버리면 앞서 말했듯 거짓이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바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는 것,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창작물은 종종 인류의 미래상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 미래 자체를 결정한다. 저자가 원한 바는 결코 아니었겠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그가 창작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자유, 편의성과 더불어 권력기관의 통제 능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실제 현대판 1984를 찍고 있는 국가가 있으니 바로 중국이다. 강력한 개인정보 통제로 자국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자 노력하는 중국의 노력은 마치 1984의 사회와 비슷하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1984’란 말인가. 인터넷 검열 등 콘텐츠에 대한 검열과 언론에 대한 탄압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이에 무덤덤한 한국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매우 두렵다.
- 저자
- 조지 오웰, 박경서 (해설)
- 출판
- 코너스톤
- 출판일
-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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