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소개] 나, 조선소 노동자 (마창거제 산제추방운동연합, 코난북스)

작은독서가 2022. 12. 26. 03:40

책 '나, 조선소 노동자' 전자책 표지 사진

책 소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프로젝트 건조 현장에서 크레인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2017년 5월 1일 노동절이었다.(https://youtu.be/7 hGRZejTyn4)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보다 많은 이들이 다쳤다. 당시 많은 매체에서 이 사고를 다루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부끄럽게도 나도 그랬다. 책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은 드물지 않다. 오히려 흔하다. 산업 재해는 큰 건이 아니면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크다는 건 어느 정도냐 하면 사람 수십 명의 사상자 정도는 나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재 사고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몇 명씩은 산재 사고로 사망한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모르는 건 큰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한 둘 죽는 ‘평범한 산재’는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되더라도 묻히기 일쑤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힘쓰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눈빛은 싸늘하다. 그런 지위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관심 밖 이야기이다. 어쩌다 등장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노조 활동, 파업, 과격한 행동들 따위다. 이들의 모든 투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모든 투쟁이 근거 없이 떼를 쓰는 것은 아님에도 국민들은 이들의 활동을 보며 치를 떤다. 실상이 어떤지는 모른 채. 돈 더 타가려는 부도덕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으로 낙인찍는다. 이런 상황인데 노동자 산업 재해가 진지한 공론의 장에 나올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묻힌다. 간간이 유독 잔인하고 끔찍한 산업 재해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한 순간의 일이다. 사람들은 이내 잊어버린다. 노동자의 고통은 그대로 죽 이어진다.

 

따라서 이 책의 존재는 뜻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서술한 이유로 노동자의 이야기, 특히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인기가 없고 잘 읽히지 않기에 출간되어도 금세 묻히기 일쑤다. 따라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책을 엮는 이도 많지 않다. 당장에 서점 사이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적, 혹은 페미니즘 관련 서적, 베스트셀러 소설 정도다. 따라서 노동자를 주제로 한 책을 펴낸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특히 사고의 책임 주체가 삼성중공업이기에 이 책을 내기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중압감을 견디고 책을 출간해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한다.

 

책은 당시 사고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구술한 이야기를 정리한 기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총 아홉 명의 노동자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당시 천 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다. 그중 아홉 명의 이야기만 들어 있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더 많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에 아홉 명은 너무 적다 싶어 불행이라 생각했다. 한편 피해자들이 느낀 감정의 상처, 고통, 괴로움, 절망, 불안, 두려움이 열화 없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아홉 명만 이 책에 등장해서 다행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책에 등장했다면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파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 아홉 명은 나이, 성별, 사회 배경, 기타 여러 가지가 다 다르다. 그렇지만 공통점이 있다. 조선소 노동자라는 것.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노동자 소시민이라는 것, 또 이들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어디에 소속되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근로 계약을 맺은 하청업자라는 것이 똑같다. 이들은 모두 전형적인 사회적 약자다. 온갖 부조리를 견디고, 위험에 내몰리고, 그러다 소모되는 약자들. 이들은 돈이 절실하다. 수입이 없으면 생계가 막막하다. 자신도 그렇고 그와 관련된 가족도 그렇다. 그것이 이들 피해자를 답도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로서, 약자로서의 삶으로 밀어 넣었다.

 

책은 한 명 한 명씩 파트를 나눈다. 내용은 대충 사고 직전과 직후의 상황, 사고 이후 조선소가 문을 잠시 닫으면서 금전적인 곤란함에 처한 상황, 그리고 사고와 관련된 신체 정신적 피해와 그로 인한 변화 상황을 기술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 후유증이다. 대부분 신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데 특히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하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고,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 예컨대 머리 위나 곁에 크레인이 있는 상황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환청, 환각 증세가 나타나 곤혹스러운 사람도 있다. 결국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피해자는 성격이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어 이따금 가족들과 충돌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스스로 죄책감이 시달리고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은 당사자의 정신적인 문제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 그저 겉보기에는 안 아프니 일 안 하려고 뺀질대는 한량으로 보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작 당사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다친 상태인데도 말이다. 특히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조차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끊임없는 고통과 죄책감이다.


고통은 내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도 온다. 이는 분노와 같이 온다. 우선 사측은 마치 분노 유발을 위해 타고난 선수처럼 보인다. 그들은 진정한 사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계산기 위에 피해자를 올려두고 얼마면 이 사고를 최대한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또 삼성중공업, 특히 그들에 속한 법무팀은 이런 산재 문제를 기업에 유리하게 처리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가 쥔 돈을 이용해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힘없는 유가족과 피해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은 당장에 돈이 필요하다. 그 약한 부분을 건드리면 대체로 유가족들이나 피해자는 무릎을 굽힌다. 결국 회사가 원하는 합의에 도달하고 상황은 종료된다. 그 이후 진실은 묻히고 사고는 없던 일처럼 되어버린다.

 

한편 국가 기관 또한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다. 이들은 피해자를 지원하고 보호하기는커녕 상처에 재를 뿌린다. 정부는 애당초 이들의 아픔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제대로 된 조사, 설문을 실시하지 않았다. 산재 신청과 같은 복잡한 일은 피해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피해를 입증하고 주장하는 건 고통받는 피해자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한다. 이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정부 기관이 회사의 편을 들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산재 신청을 하면 어차피 승인되지 않을 것이니 조용히 넘어가라고 종용하는 경우는 예사이다. 산재 승인을 위한 평가도 진정성은 1도 없다. 약속 시간도 늦고, 처리도 늦고, 결과 발표도 늦다. 그동안 피해는 사회적 약자, 노동자에게 계속 누적된다.

 

이 책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은 계기는 5개월 전 있었던 조선소 파업이다(https://youtu.be/RTMkPFmgnaE).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 기간만큼 감안하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조선소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뭐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5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숫한 사건 사고가 난 – 당장에 이 사고도 5년이나 전에 일어났고, 당시 대책도 마련했다. - 일터인데 이렇게 똑같다고? 시간이 지나도 조선소 노동자들의 처우가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슬프고 분노했고 또 절망했다. 책 속에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부당 노동 행위가 당연한 일상처럼 이루어진다. 그게 지금도 똑같다. 이를 알게 되니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조선소 노동자가, 아니 더 넓게 한국의 모든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안전한 노동 환경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나, 조선소 노동자
《나, 조선소 노동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프로젝트 건조 현장에서 2017년 5월 1일 발생한 크레인 충돌, 추락 사고를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안은 노동자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담은 구술기록집이다.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물량팀’, ‘돌관’이라 불리며 일한 하청 노동자들의 조선소 노동에 대한 증언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전국 각지에서 조선소로 들어와 일했던 노동자들의 생애사이기도 하다. 주인공 아홉 명은 자신이 겪은 사고에 대한 증언만큼이나 사고가 일어난 조선소 노동 환경, 하청 노동의 구조, 회사가 사고를 수습하고 대응하는 과정, 산재를 처리하느라 대면한 환경, 그리고 사고 후 자신이 겪고 있는 후유증과 실직의 상황 등 여러 갈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저자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기획)
출판
코난북스
출판일
2019.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