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게 살자
무례하다
최근 칼부림 사건이 났다. 이 끔찍한 테러에 그나마 의의를 찾는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테러에서 주목할 건 사건 이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모방 범죄 예고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된 수많은 협박에 우리 사회는 아연실색했다. 당연히 정부는 강력한 대응을 약속했다. 이내 범인들이 잡혔는데, 대부분은 장난이었다.
내가 주목한 건 그중 하나였다. 사람을 몇 명 어디서 죽이겠다는 글은 같았다. 특이한 건 대상으로 한국 남성을 굳이 특정했다는 것이 하나요, 경찰에 붙잡히고 한 말이 다른 하나이다. 잡힌 범인은 30대 여성으로 분당 흉기 난동 사건에서 여성이 큰 피해를 봤다는 뉴스를 보고 남자를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말했다.
이 사례는 무례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어째서 무례한 인간이 이리도 많아졌는지에 대한 설명 자료가 될 수도 있겠고, 그걸 확대 재생산한 SNS를 포함한 인터넷 가상현실의 폐해의 한 증거로도 볼 수 있겠다. 최근 무례함이 남과 나를 편가르고 상대편을 근거 없이 혹은 비합리적으로 깎아내리고 짓밟는 데에서 자주 표출된다는 것을 볼 때, 이 사례는 남녀 갈등으로 인한 무례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참고로 그녀가 말한 범죄 동기는 제대로 된 합리적인 근거조차 아니었다. 실제로 범인이 의도적으로 사람을 헤친 피해자들은 남성 4명, 여성 5명으로 특정 성별을 가려 공격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저 자신의 남성 혐오 사상에 뭔가 합리적으로 보일법한 구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찾은 것뿐이다. 스스로는 실제로 그렇게 믿었을지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무례는 비단 이런 범죄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무례는 이제 시대정신이라 해도 될 만큼 널리 퍼졌다. 상술한 젠더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 갈등이라 붙일 수 있는 모든 사례에서 발견된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무례하지 않은, 품위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이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사회 구석구석 무례한 인간이 넘쳐 난다. 일례로 인기 웹툰 작가 가족의 특수교사에 대한 집요한 악성 민원과 소송전을 보라. 유명세를 누리는 이런 사람도 무례할 수 있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이제 시대의 정신이 된 무례함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이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다. 다수처럼 무례하게 살아야 할까. 아니면 단호하게 이를 거부하고 품위를 지키며 살아야 할까. 온갖 무례로 무장한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품위를 지키는 건 득 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품위만이 사회 문제, 특히 여러 갈등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째서 무례한가
책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은 저자 ‘악셀 하케’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향해 쓴 지침서이다. 저자는 무례가 무엇인지, 품위는 또 무엇인지 논한다. 이후 무례가 넘치는 현 상황이 어째서 벌어지게 되었는지 고찰한다. 유럽의 난민 문제, 한국의 탄핵 사건 당시 BBC 뉴스로 인해 촉발된 문제, SNS 상의 다툼과 갈등 문제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여 독자가 이 시대의 무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후 저자는 무례한 시대를 대처하는 방안으로 ‘대화’를 꼽는다. 정확히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친절하게 대하는 자세를 통해 모두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말한다.
책에서 무례한 시대가 온 이유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과 확실성을 추구한다. 이는 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루기 전, 원시 사회에서 이어져 온 특질이다. 당시에는 집단의 규모도 작았고 한 명 한 명 하는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해야 할 일도 시간이 지난다 해도 큰 변화는 없었다. 사냥하던 이는 사냥을, 채집하던 이는 채집을 하면 되었다. 종종 기술을 배워 도구를 만드는 이도 있었는데 그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도구를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즉 안정적이고 확실한 삶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태다. 예를 들어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상황과 이직이 빈번한 현실을 들 수 있다. 인터넷 등 문명의 이기는 이러한 불안한 상태를 촉진했다. 인간 본능에 따르면 위기 상황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 극단적인 상태로 빠져든다. 가령 공격적인 비건, 레디컬 페미니스트 등 사람들이 단순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제 주변을 해석하고 통제하려고 하면서 안정을 찾는다. 통제는 안정을 낳는다. 한편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은 뭉치기 시작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이들의 결집이 수월해졌다. 결집한 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규칙과 원칙을 위협하는 반대 성향의 집단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공격은 언뜻 비합리적이나 본인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들을 치워버리고 제거해야 안정과 확실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공격적 성향, 행동은 곧 무례함으로 표출된다. 결국 젠더 갈등, 세대 간 갈등, 여야 갈등, 정치적 이념 갈등 등 사회 내부의 첨예한 대립이 촉발되어 사회 전체는 무례함으로 가득해진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이 사회는 무례한 시대가 되었다. 품위는 사라지고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시대.
그런데 하필 왜 현대에 이런 무례함이 더 심해진 것처럼 보일까. 현대 사회가 특히 무례한 시대가 된 이유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보급에 있다. 특히 인터넷, 더 구체적으로는 SNS가 원인이다. SNS는 그동안 개인 간에 넘을 수 없는 물리적 장벽들을 완전히 허물었다. 이제 우리는 24시간 언제든지 언어 능력만 된다면 누구와도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다. 물론 다툴 수도 있다. 이런 SNS의 특징은 서비스 이용자의 사고를 고착화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글만 추천받고, 읽고,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 있다. 마치 반향실처럼. 그 결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극단적인 사고로 무장한 집단들이 탄생했다. 그것도 전 세계적 규모로 결집한 집단. 이 고집불통 집단은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타 집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된다. 일례로 한국 트위터에 존재하는 남성 혐오자들의 행동이 있다.
편협하고 극단적인 사고로 무장한 집단은 사회에 무례를 확대 재생산한다. SNS나 인터넷은 이 경향에 불을 붙었다. 구체적인 사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맘카페. 이 커뮤니티는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는 순수한 목적을 이미 잃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 자영업자들을 공격, 결국 큰 손해를 입히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아과 병원에 대한 거짓말을 일삼아 결국 폐업하게 만든다. 또 최근 이슈가 된 교사에 대한 악질적인 민원과 무고를 반복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다른 예로는 폐쇄적인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들을 들 수 있겠다. 엄격한 여성 인증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 이 인터넷 커뮤니티는 몇 차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 창조 및 전파, 극단적인 남성 혐오 조장 행위 등 사회 분열과 붕괴, 반목을 일삼아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흉 중 하나이다. 이들의 무례함은 사회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앞서 상술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 예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무례함을 뛰어넘어 품위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품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몸가짐, 마음 자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품위의 요체는 모든 사람과의 공존과 화합에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인간의 본능과는 대치된다. 인간은 문명 이전 끈끈한 소집단을 이루면서 타 집단을 배척하는 성향을 갖는다. 그렇다면 품위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다. 그것도 전지구적 단위의 인간 사회 구성원과 화합해야 하기에 본능에 따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명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면서 본능이 아닌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생활하는 법을 배웠다. 따라서 품위를 지키고 퍼뜨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의 사례가 꾸준히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무례함의 사례보다는 적지만 이러한 품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무례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예를 들어 최근 잼버리 행사에서 고생한 해외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선물한 사람을 들 수 있다. 또 군 병사들을 위해 그들의 식사 비용을 대신 결제한 사람의 선행도 품위의 사례에 넣을 수 있겠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아직 품위 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훌륭한 이들이 많다. 이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란다. 무례한 시대는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품위의 시대는 꼭 온다
최근 각종 민원 문제가 화두이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교원을 대상으로 한 악성 민원과 괴롭힘, 그리고 무고가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교원들은 이제까지 당해왔던 교권 침해 사례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은 참담하고 끔찍했다. 부모라는 작자들의 행태는 악마를 연상케 했다. 조금만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고소, 고발을 남발했다. 온갖 하찮고 역겨운 이유들로 교원을 들들 볶아대는 것이 현대 부모의 소양이라면 이 사회는 망조에 든 것이 아닐까. 그걸 본 아이들은 제대로 자랄까. 부모들의 악성 민원을 피해 사회 필수 인력인 교원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은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 해 두려움이 든다.
과연 이 사회에서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 가능하고 또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제 뉴스나 신문 기사를 펼치면 겁부터 난다. 오늘은 또 얼마나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어떤 창의적인 무례함을 펼쳤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그렇다. 그리고 여지없이 내 부정적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최근 ‘왕의 DNA’라는 단어를 보고 사례를 훑으면서 이런 자와 한 하늘을 이고 한 나라 안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이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선행을 베푸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뉴스나 기사에 나오는 기분 좋은 뉴스만이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선행의 전부는 아니다. 따라서 나는 무례한 이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보려 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같은 행동에 동참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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