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서평

나가사키의 종 (나가이 다카시, 페이퍼로드)

작은독서가 2023. 9. 3. 21:01

일본, 나가사키의 교훈을 잊었는가

책 '나가사키의 종' 전자책 표지 사진

원자폭탄 생존자의 수기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은 인세의 지옥이 도래한 듯했을 것이다. 미국과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헛소리만 지껄였다. ‘1억 총 옥쇄’를 운운하며 일본은 죽창을 깎았다. 일본 국민은 모조리 미친 듯했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일본 제국은 태생부터 전쟁과 폭력에 미쳐 있었으니 말이다.
 
미국은 일본의 전쟁의지가 광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항복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국은 갓 만든 원자폭탄을 일본 제국에 투하했다. 히로시마가 먼저 소멸했고, 뒤이어 나가사키가 사라졌다. 효과는 굉장해서 일본 제국 지도부는 광기에 찬 미치광이에서 한순간에 온순한 개가 되어 꼬리를 말고 항복했다. 참으로 악인의 말로에 걸맞은 추잡한 결말이었다.

책 ‘나가사키의 종’은 원자폭탄으로 잿더미가 된 나가사키에서 의학박사로 의대에서 일하던 나가이 다카시의 수기이다. 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다만 중상을 입어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붕괴한 의료 시스템의 현장에서 그는 폭발 직후부터 생존자 구호와 치료에 힘썼다. 그때의 경험이 바로 이 책을 만들었다.
 
그는 원자폭탄이라는 무기를 통해 전쟁이 낳는 끔찍한 결말을 경험했다. 따라서 죽기 전까지 일본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원자폭탄의 위험성과 반전주의를 설파했다. 다양한 책을 지었는데, 이 책도 여타 책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전쟁 반대 메시지가 강하게 녹아있다. 가령 책 제목인 ‘나가사키의 종’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역에서 발굴한 종을 의미하는데, 평화를 희구하며 종을 친다고 한다. 더불어 책 말미에 첨부한 저자의 자신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에서는 일본 정부가 평화를 내버리고 전쟁을 선택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그의 걱정이 듬뿍 묻어난다.
 
다만 과연 그가 평화주의를 외칠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일본 제국의 끔찍한 만행을 수십 년 당해온 한국의 국민으로서 나는 저자의 말이 위선적이라 느꼈다. 여러 국가에 번역,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세계 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반전의 사상을 전파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진 고초를 감내한 식민지 국민들이 보기에 그의 평화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는 가해자로서 그들의 죄에 대한 사과의 한 마디도 없었고, 책임지는 말도 없었다. 오히려 마치 전쟁의 피해자인양 행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사람, 과연 피해자인가?
 

평화를 이야기할 자격은 있는가

책 ‘나가사키의 종’은 원자폭탄이 터진 나가사키로 폭발 직전과 직후에 저자가 경험한 일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저자는 나가사키 의대 교수로 전쟁 말기에는 전쟁과 학업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는 미국의 공격으로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는 구호반이었다. 그러한 경력 때문에 책은 대체로 원폭 직후 시신 처리, 생존자 처치, 그리고 구호 활동에 쏠려있다.
 
폭발 이후 치료를 받으려 의대로 몰려오는 생존자, 거리에서 건물 잔해 등에 깔려 시시각각 죽음의 단말마를 내지르는 환자들, 방사능으로 말로 묘사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의 책에 잔뜩 적혀 있다.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저자를 포함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도중에도 부상자 치료를 멈추지 않는 의대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특히 마을과 마을 사이, 먼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면서 부상자를 치료하는 그들의 모습은 의료진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준다. 극한의 상황에서 제 몸은 안중에도 없이 치료를 계속하는 모습에 보편적인 인류애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수많은 죽음과 끔찍한 부상자들, 그리고 폐허가 된 나가사키의 모습을 본 탓일까. 아니면 제 아내가 원자폭탄의, 더 나아가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서일까. 저자는 이후 죽을 때까지 반전을 부르짖는다. 그가 평화를 주창한 결정적 계기는 내 생각에 일제 항복 이후에 찾아온 치료 의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천황이 항복 선언을 발표한 사실을 듣고 그와 그가 속한 구호대는 절망에 빠져 모든 활동을 멈췄다. 나라가 망했는데 이까짓 치료가 무슨 소용이냐는 이유로. 하지만 이후 다시금 일어서서 치료를 거부당해 돌아가는 사람을 붙잡는다. 그는 깨달은 것이다. 나라가 망해도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그리고 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결국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그는 절망을 극복하고 치료 활동에 힘쓴다. 심지어 그는 나가사키에 잔류한 방사능의 위험성을 우려해 자신을 희생한다. 바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장소에 움막을 짓고 방사능의 위험성을 직접 조사한 것이다.
 
다만 나는 그의 평화주의를 비뚤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일제 강점기를 겪은 한국의 국민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원자폭탄에 당한 일본 제국과 피해자 일본 국민에 아무런 동정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들이 겪은 고통은 결국 일본 제국의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그대로 자신들에게 되돌아온 것일 뿐이다.
 
개인적인 감정을 차지하고서라도 그의 평화주의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건 저자가 자신들의 죄과를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도 사과도 없었다. 애당초 저자는 전쟁 당시 딱히 전쟁에 대한 죄의식을 품지도 않았다. 전쟁이 자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인식은 했지만, 그도 일본인으로서 묵묵히 일본 제국의 전쟁 수행에 협력했다.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십분 활용해 자국 병사와 시민들을 치료해 일본의 전력을 채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가 생각을 고쳐먹은 계기는 결국 미국의 원자폭탄 덕분이었다.
 
마치 전쟁에서 유리된 듯, 저자가 묘사하는 원자폭탄 폭발 이전의 나가사키는 아름다웠다. 자신들은 타국에서 마을을 불태우고 때려 부수고 부녀자는 강간하고 기타 몹쓸 짓을 한 것을 생각하면 1945년 전쟁 말기의 나가사키는 명백히 비정상이었다. 나는 이 공간이 당시 일본인의 정신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원자폭탄 이전에는 1억 총 옥쇄, 귀축영미 등 온갖 군국주의 프로파간다에 취해 일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이 보살피는 나라라며 신국이 질리 없다 단언하는 일본 국민들의 정신은 폭발 전 나가사키와 같다. 이후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일본 국민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은 체벌하면 어른 말을 듣는다. 개중에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힘에 짓눌려 어쩔 수 없이 말을 듣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체벌로 도덕을 주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무의미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이라는 힘에 짓눌려 나온 평화주의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냥 원자폭탄의, 미국의 힘에 굴복한 시늉만 한 자들은 이후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 제국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일본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부인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신뢰할만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없는 일로 만든 것이다. 이는 명백히 최근 일어나는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결과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곧 군국주의와 연결되는데, 우경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과거 일본 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로 평화를 깨고 팽창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다. 헌법을 수정해 다시 군을 창설하려는 것도, 주변국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책 ‘나가사키의 종’의 저자 나가이 다카시는 일본이 나가사키에서의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를 잊고 다시 전쟁을 벌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일본의 우경화 상황을 보면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일본 우파들은 미국의 힘, 예를 들어 원자폭탄의 위력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6.25 전쟁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기회를 얻어 화려하게 비상해 일본 정계, 재계를 장악했다. 이제 그들은 미국, 중국 양국의 패권 경쟁을 기회로 노골적으로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이 평화를 깨뜨리고 팽창을 시도했을 때, 언제나 한반도가 먼저 목표가 되었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가 이를 증명한다. 최근에는 일본이 노골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 공익 광고, 공문서, 지도 등을 이용해 도발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시도가 독도 하나 만을 위한 행동일까. 아니면 더 큰 욕망을 위한 전초전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참히 짓밟힌 역사를 되새기면서 미래를 대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