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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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정치에서도 그러한데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의 대표가 되었을 때 한국과 미국의 상황은 아이러니의 극치였다.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탄생했을 그때,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지켜봤다. 당시 나는 한국의 시민운동에 고무되었다. 이전까지 책으로만 봤던 한국의 시민 혁명이 내 눈앞에서 실제로 전개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반민주적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의 시위는 사람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여실히 드러냈다. 연일 기록을 경신한 촛불 시위 규모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나타내는 듯했다. 결국 촛불 시위는 성공했고 이 시위는 한국 민주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한편 미국, 더 나아가 서구 사회 전체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충격에 빠졌다. 이제껏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한 미국이 그와는 영 동떨어진 인물을 당선시킨 탓이었다. 물론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도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의견이 공공연히 나돌던 시기였다. 러시아의 부상, 폴란드와 헝가리 그리고 터키의 독재 등 위기 징후는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미국의 일이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즉각 항의하는 지식인, 일반 시민들, 사회 운동가 등 일단의 무리들이 들고일어났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트럼프는 제 권한을 다 바쳐 민주주의를 파괴하겠다는 듯 행동했다. 그의 목적이 민주주의의 파괴와 시민 사회의 분열이라면 그는 성공했다. 불타는 미국 국회의사당을 보며 나는 민주주의의 몰락을 보는 듯했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의 유산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조각난 미국 시민 사회의 모습은 도저히 민주주의의 수호자답지 않았다. 흔들림 없을 거라 생각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세차게 요동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특히 지식인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그의 부상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민주주의 관련 서적에서 그가 나오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 민주주의 위기의 부정적 사례로서 그는 학자들 사이에서 모범적 사례로 통용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미국인은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니 이러한 대접이 납득할 만 하기는 하다. 물론 그의 등장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서적이 급증한 탓도 있을 것이다.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폭정’도 트럼프 당선 이후에 출간되었다. 저자는 티머시 스나이더, 역사학자로 현재의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역사적 사례를 들어가면서 – 특히 나치 독일의 사례, 트럼프의 사례를 많이 들춰보면서 – 설명한다. 그는 책에서 총 20개의 방법을 열거하는데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면 꼭 함양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이 방법을 알고만 있어도 민주주의의 적들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며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간 원인은 여럿이 있겠지만,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소홀히 한 우리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퇴행과 독재자의 출현은 우리 인류 전체의 수준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방안을 숙지하여 완전한 민주주의 정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말한 20번째 방법을 언급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는 폭정을 막을 마지막 방안으로 ‘최대한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폭정 아래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미래를 위해서 어떤 죽음을 택할 것인가? 자유를 위해 죽을 것인가, 아니면 폭정 아래에서 죽어 갈 것인가? 한 번뿐인 인생, 그저 현상 변화에 침묵하며 수동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는 삶은 얼마나 무가치한가. 우리나라의 미래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의 힘으로 변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모두 내놓은 투사들처럼 살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악에 굴복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행동하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기 가운데 표류하는 대한민국을 구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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