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60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동아시아)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라 문득 우리의 ‘공부’는 잘못되었다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뭔가 채워진다는 느낌보다는 자꾸만 마음속을 퍼다 버리는 듯 공허함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공부가 부추기는 지독한 소외였다. 도서관 열람실이든, 스터디카페든 만석인 요즘에 오히려 사람들은 배경처럼 흐릿했다. 그나마 팬이 딸깍이는 소리, 기침소리, 숨소리, 가끔 들리는 코 고는 소리가 이들을 잠시 선명하게 했다. 물론 아주 잠시 뿐. 이내 배경으로 녹아들어 눈에 띄지 않았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나는 그 속에 녹아들었다. 당연히 곧 나는 완벽히 고립됐다. 공부라는 단어는 그래서 당시의 외로움과 불안을 떠오르게 한다. 책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가, 정확히는 그 제목이 나를 ..

전자책/서평 2024.04.01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스미노 요루, 소마미디어)

거짓된 자신은 없다 사람은 각자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오롯한 존재다. 따라서 자신을 찾는 것은 모든 이의 숙제다. 모두가 이를 찾는 건 아니다. 그 과제를 수행하며 우리는 때로 멈추고 또 방황한다. 자아를 찾는 여정은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에는 자아실현을 향한 열망은 노곤한 삶 속에서 흐려진다. 하나 둘 자아 찾기를 포기하다 타성에 젖은 삶을 영위하는 이가 늘어난다. 자아 성찰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각박한 사회가 사람들에게 작은 여유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보이는 ‘외면’과 숨겨진 ‘내면’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방황한다. 책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는 그런 고뇌를 담았다. 이야기 속에는 청년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는 발버둥과 아픔, 그리고 성찰이..

전자책/서평 2024.01.18

서사의 위기 (한병철, 다산초당)

이야기는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이야기가 무너진 시대에 산다. 사람은 더 이상 길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대할 능력이 없다. 더 짧고 강렬한 정보를 원한다. 심지어 더욱 짧은 정보를 위해 숏츠, 릴스 등과 같은 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을 찾는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발달은 이야기의 몰락과 정보의 몰두를 가속화했다. 이제 몸에 지니지 않으면 불안한 스마트폰의 존재감처럼, 짧은 동영상 정보의 존재감은 이제 무시할 수 없이 커졌다. 한편 이야기를 담은 책도, 말도 이제는 낯선 매체가 되었다. 애당초 위기였던 책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완벽히 몰락했다. 말은 아직 저항하고 있으나 미래 없는 싸움일 뿐이다. 사람들은 주변과의 대화보다 혼자 스마트폰 영상, 웹툰, 웹소설 따위를 보는 걸 편하게 여..

전자책/서평 2023.12.06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갤리온)

그들도 사람이기에 그렇다 우리와 멀고 또 가까운 존재들 우리는 매일 사건 사고들을 접한다. 굳이 찾는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다. 사건 사고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끈질기게 맴돈다. 심지어 사건은 자극적이다. 도저히 거리를 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살인, 강간, 방화, 강도, 탈옥 등등.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이 흉흉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범죄자에 대한 인식은 더할 나위 없이 시궁창에 처박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들은 사람이 아닌 그 무언가로 재분류된다. 범죄자는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배척된다. 따라서 당연히 보통 사람들은 이제 범죄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범죄자의 정체성은 사람이 아닌, 그저 그들이 저지른 범죄로 정의될 뿐이다. 그런데..

전자책/서평 2023.11.10

폭정 (티머시 스나이더, 열린책들)

위기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세상에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정치에서도 그러한데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의 대표가 되었을 때 한국과 미국의 상황은 아이러니의 극치였다.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탄생했을 그때,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지켜봤다. 당시 나는 한국의 시민운동에 고무되었다. 이전까지 책으로만 봤던 한국의 시민 혁명이 내 눈앞에서 실제로 전개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반민주적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의 시위는 사람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여실히 드러냈다. 연일 기록을 경신한 촛불 시위 규모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나타내는 듯했다. 결국 촛불 시위는 성공했고 이 시위는 한국 민주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한편 미국, 더 나아..

전자책/서평 2023.09.11

나가사키의 종 (나가이 다카시, 페이퍼로드)

일본, 나가사키의 교훈을 잊었는가원자폭탄 생존자의 수기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은 인세의 지옥이 도래한 듯했을 것이다. 미국과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헛소리만 지껄였다. ‘1억 총 옥쇄’를 운운하며 일본은 죽창을 깎았다. 일본 국민은 모조리 미친 듯했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일본 제국은 태생부터 전쟁과 폭력에 미쳐 있었으니 말이다. 미국은 일본의 전쟁의지가 광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항복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국은 갓 만든 원자폭탄을 일본 제국에 투하했다. 히로시마가 먼저 소멸했고, 뒤이어 나가사키가 사라졌다. 효과는 굉장해서 일본 제국 지도부는 광기에 찬 미치광이에서 한순간에 온순한 개가 되어 꼬리를..

전자책/서평 2023.09.03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빌 맥과이어, 양철북)

당장 행동하라 점점 최악으로 간다 이번 여름도 여지없이 폭염이 찾아왔다. 밖에 나서는 것이 두려울 정도의 뙤약볕에 본능처럼 에어컨 주변을 맴돌았다. 그 결과 이전 해보다 에어컨 가동 시간이 크게 늘었다. 그전에도 늘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년은 또 얼마나 에어컨을 틀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러나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에어컨을 망설임 없이 틀 것이다. 여름을 버티려면 어쩔 수 없다. 피부로 느껴지는 폭염은 예전부터 귀가 따갑게 들은 지구 가열화(=온난화)의 결과이다. 그 결과 매년 한국은 다양한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컨대 온열질환자 수가 매년 급증하는 문제가 있다. 그 외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남부 지방은 농업용수 부족, 식수 부족 상황을 겪었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가뭄이 극심한 중에 태..

전자책/서평 2023.08.29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위즈덤하우스)

그가 본 그 달은 그 없이도 항상 떠오른다 나는 왜 이 책을 펼쳤는가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이미 고인이 된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성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러니까 유고집 비슷한 책이다. 사실 류이치 사카모토는커녕 음악 자체에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고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인의 마지막 저술이라는 뜻깊은 책이라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생판 남의 사정에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왜 결국 펼쳤는가? 그의 유명세에 끌린 것도 아니요, 유행을 타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의 사회 운동가적 면모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반원전 운동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내 관심을 끌었다. 그는 3.11.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건 이후 원전..

전자책/서평 2023.08.27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악셀 하케, 쌤앤파커스)

품위 있게 살자 무례하다 최근 칼부림 사건이 났다. 이 끔찍한 테러에 그나마 의의를 찾는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테러에서 주목할 건 사건 이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모방 범죄 예고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된 수많은 협박에 우리 사회는 아연실색했다. 당연히 정부는 강력한 대응을 약속했다. 이내 범인들이 잡혔는데, 대부분은 장난이었다. 내가 주목한 건 그중 하나였다. 사람을 몇 명 어디서 죽이겠다는 글은 같았다. 특이한 건 대상으로 한국 남성을 굳이 특정했다는 것이 하나요, 경찰에 붙잡히고 한 말이 다른 하나이다. 잡힌 범인은 30대 여성으로 분당 흉기 난동 사건에서 여성이 큰 피해를 봤다는 뉴스를 보고 남자를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말했다. 이 사례는 무례..

전자책/서평 2023.08.15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김영건, 어크로스)

독서, 같이 할래요? 독서라는 행위 우리나라에서 독서라는 취미는 왠지 모르게 입에 담기 민망할 때가 많다. 언젠가 자기소개 취미 항목에 왕왕 독서를 썼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독서라는 말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는 이들이 많다. 다른 취미 활동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서를 취미로 삼은 사람은 그래서 일단 나를 변호할 준비를 잔뜩 해야 한다. 최소한 언제 뭘 읽었는지 기록해 놓은 걸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감상문, 서평 등을 써서 모아 두는 것이 좋다. 이 정도는 준비하고 증명해야 겨우 독서가 취미라는 사실을 상대방이 진심으로 믿는다. 유독 독서 취미를 믿지 못하는 건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이 크다. 2022년, 작년 한 해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성인은 절반도 안 된다. ..

전자책/서평 20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