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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산지니)

처음 가네코 후미코를 알게 된 건 영화 ‘박열’을 통해서이다. 이 영화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든든한 조력자, 파트너, 그리고 연인으로 등장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독특하다고 여길 지 모르겠다. 그들이 살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일본 제국의 여성과 식민지 조선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도 이러한 관계를 형성했다. 나는 이 영화를 알게 된 후 흥미를 갖고 이를 시청했다. 대체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일생 전체 중 아주 일부분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감질났다. 특히 가네코 후미코. 이 사람이 어째서 조선인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따라서 가네코 후미코가 직접 쓴 책 ‘나는 나’는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리라 생각했다. 이 ..

전자책/서평 2022.04.23

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생각정원)

이제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해쳐 나가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존의 세계 질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했을 뿐 이전부터 세계 곳곳은 파열음이 들리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점점 극단적인 세력들에 의해 망가지고 있었다. 탈냉전 시기의 잠깐 동안의 평화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깨졌다. 사회 내부는 불평등, 부조리, 부정의로 인해 갈등의 수위가 점점 오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조 증상을 무시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폭발했다. 현재의 암담한 상황은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기에 절망할 여유 따위는 없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해야 할까? 다행히도 우리는..

종이책/서평 2022.04.07

적의 벚꽃 (왕딩궈, 박하)

책 ‘적의 벚꽃’은 읽을수록 마음 저릴 만큼 슬프다. 주인공은 프롤로그에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쓸 수 있는 건 슬픔뿐이었다. 책 속에 뒤죽박죽 시점이 섞여서 등장하는 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슬프다. 주인공이 미래를 향해 버둥거리는 그 모습이 아니꼬운지, 세상은 그에게 좌절을 부르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천재지변이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우연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방해물들은 결국 주인공의 희망을 꺾어버린다. 그는 슬픔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슬픔뿐이었다. 필자는 이 책을 세 가지 키워드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가난, 사랑, 그리고 욕망이다. 주인공의 슬픔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고, 심화되었다. 따라서 이를 따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

전자책/서평 2022.04.03

소모되는 남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시그마북스)

한국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가는 이슈가 있다.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이다.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이 표면화된 건 정치 분야였다. 특히 선거로 이들의 존재를 안 사람이 많다. 중장년, 노년층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오래된 문제이며 계속되고 있다. 이 책 ‘소모되는 남자’는 지금도 한창 치열하게 논쟁 중인 서구에서 나왔다. 이 책은 남성이 과연 좋은 것인지 의문에서 시작한다. 이는 페미니즘에서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을 억압한다는 주장에 대한 되물음이다. 이 주장이 옳다면 남성은 분명 이점이다. 과연 그러한가? 작가는 남성이 ‘이점’이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즉, 이 책은 페미니스트가 주장인 ‘억압’에 대해 반박하는 책이다. 작가는 남성이 문화의 소모품으로 묘사한..

전자책/서평 2022.03.20

프린세스 바리 (박정윤, 다산북스)

언젠가 쇠락한 골목을 걷고 있었다. 나는 구불거리는 도로에서 길을 잃었다. 오전이었는데, 좁은 길에는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웠다. 더구나 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도로 양 옆을 꽉 채운 탓에 답답했다. 그곳의 건물은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뿌옇게 먼지 낀 유리창 너머는 알아보기 어려운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녔다. 바깥의 오래된 간판이 없었다면 어떤 곳이었는지 알 길은 없었을 것이다. 거기서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노파였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가격을 불렀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 나이를 말하기도 했다. 나는 모르겠다는 얼굴로 지나가려 했다. 노파는 나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정말 젊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제야 알았다. 공공연하게 매춘을 알선하는 사람..

종이책/서평 2022.03.13

픽사 스토리텔링 (매튜 룬, 현대지성)

사람은 작가다. 인생은 자신이 짓는 이야기책과 같다. 예컨대 ‘휴먼 라이브러리’라 불리는 이 행사가 있다. 이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듯, 사람을 빌려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행사이다. 이는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책이라는 하나의 방증이다. 사람들은 인생 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 한다. 당연하다. 자기 인생을 비극으로 끝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모두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이야기를 쓸 수 있지만 깨닫고 보면 엉망진창인 자신의 글을 본 적이 한 번쯤은 있으리라.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우리는 작법서를 읽는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영어책을 읽고, 수학을 잘하려고 수학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도 필요한 책을 읽..

전자책/서평 2022.02.26

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달로와)

아플 때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죽이다. 묽게 풀어진 밥알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에는 아픔도 조금 괜찮다고 느낀다. 조심스럽게 아픈 부위를 살살 어루만지는 느낌. 이 책도 같다. 작가 아오야마 미치코의 책 ‘도서실에 있어요’에 대한 말이다. 이 책은 마치 죽처럼 술술 읽힌다. 금세 마지막 장에 이른다. 하지만 절대 대충 만든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독자의 아픈 곳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거대한 음모, 커다란 사건은 없다. 사소하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건만 있다. 취업, 퇴직, 육아, 꿈, 기타 등등. 그냥 독자의 이야기 같다. 따라서 등장인물이 낯설지 않다. 특히 책은 챕터마다 주인공은 매번 바뀐다. 끌어안고 있는 고민도 달라진다. 따라서 독자들은 적어도 이들 중 한 명 이상에게 ..

전자책/서평 2022.02.20

나의 가해자들에게 (씨리얼, 알에이치코리아)

오늘도 누군가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학교 폭력 얘기다. 최근 몇 년 간 잔인한 학교 폭력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분노는 일시적이었다.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의 말은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다. 이는 놀랍지 않다. 이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심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학교 내 폭력은 존재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곁에 있는 방관자들은 알고도 모른척했을 것이다. 교사도 알면서 시치미를 뚝 때고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 그러니 학교 폭력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질 리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 폭력에 관련 없는 척, 무관심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숨겨서 뭐하랴,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학교에서..

전자책/서평 2022.02.11

생각한다는 착각 (닉 채터, 웨일북)

우리는 인간 가운데 내면이 있다고 믿는다. 설령 이것이 과학적인 이론에 기반한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문명 이전부터 그러했다. 이후 철학, 종교, 심리학 등등 내면을 탐구하는 학문과 사조들도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도 이를 믿었다. 요컨대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 내면의 자아를 탐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 그래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행동 따위는 내면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말이다. 이런 생각은 과연 올바른가? 저서 ‘생각한다는 착각’에서는 위와 같은 오랜 상식에 반기를 든다. 도발적인 제목처럼, 저자는 마음은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내면은 그저 우리의 상상일 뿐, 인간은 그저 즉흥적인 창작을 계속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언뜻 이해..

전자책/서평 2022.02.09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웅진지식하우스)

또 오늘이 시작됐다. 집 밖으로 나간다. 순식간에 외로움이 밀려든다. 주변에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작 나를 보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들을 보고 있지 않다. 손에 든 스마트폰의 화면만 바라본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나는 혼자인 듯한 느낌이 든다.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대체로 이렇다. 이 상황은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사회 모습이 되었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진다. 코로나19 때문은 아니다. 이 병은 고독을 표면화했을 뿐이다. 이전에도 수많은 연구는 외로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렇지만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뾰족한 해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 문제는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코로나19라는 ..

전자책/서평 2022.01.23